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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 바이러스 재난과 개와 인간의 내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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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유정 작가의 신작 장편소설 <28>이 나오자마자 단박에 화제에 올랐다. 이미 2년 여전 <7년의 밤>을 통해서 "한 남자는 딸의 복수를 꿈꾸고, 한 남자는 아들의 목숨을 지키려 한다"는 플롯 아래, 스릴러 구도로 풀어나가며 인간 군상과 본질에 대해서 통찰하는 이야기를 전해준 바 있다. 이번엔 좀 더 심화시켜 우울과 절망이 지배하는 인간의 구원과 잔혹한 리얼리티를 구사하는 장기를 발휘하며 또 한번 주목을 끈다. 잔혹은 감염 바이러스로 인해 '재난'의 요소로 만들어지고, 영화에서나 볼 법한 리얼리티를 구현하며 독자들을 생생한 화양의 현장으로 인도한다. 그 속엔 사람들만의 사투가 있는 게 아니다. '개'들도 나온다. 목숨을 앗아가는 '빨간 눈'의 괴질은 '인수공통전염병'으로 귀결되고, 인간의 역사와 함께 해온 개들이 살처분돼 가축처럼 생매장 당한다. 그리고 개들의 우두머리 늑대개 '링고'는 인간들을 향해 가열한 '하울링'을 울부짖는다.



장편소설 <28>은 '재난'을 소재로 한 이야기다. 흔한 설정이면서도 어김없이 '바이러스' 코드가 들어가 있다. 불가항력적인 자연재해나 인재가 아닌, 감염체에 의한 재난으로 잔혹한 리얼리티를 구사한다. 주요 인물은 5명 정도다. 과거에 알래스카에서 개썰매 경주를 하다가 화이트아웃에 갇혀서 썰매개들을 잃고 천신만고 끝에 살아서 유기동물센터 '드림랜드'를 운영하며 살아가는 서재형, 사회부 여기자로 익명의 제보를 받고 드림랜드를 나락으로 떨어뜨렸다가 재조사 과정에서 서재형의 진심을 알고 사랑하게 된 김윤주, '빨간 눈'의 괴질이 휩쓸고간 고도 화양에서 사람들을 구하기 위해서 고군분투하는 간호사 노수진과 소방구조대원 한기준, 그리고 감염내과 과장 박남철과 그의 아들 싸이코패스 살인마 박동해까지, 이런 인물들의 얽히고설킨 사연들이 층위를 넘나들며 이야기를 펼친다. 여기에 서재형이 아끼던 '스타와 쿠키'라는 커다란 반려견과 늑대개 '링고'가 의인화돼 1인의 시점으로 사람들을 바라본다.

바이러스 재난의 표피와 개와 인간의 내피를 갖춘 '28', 호불호가 갈릴 듯..

사실 이야기 자체는 전체적으로 '바이러스 재난'이 관통하고 있지만, 여기선 감염체에 대한 어떤 정보나 발원지 색출에 대해선 언급하지 않는다. 전염병의 역학관계 분석이나 백신의 개발과 같은 '구원투수로서의 과학'이 아닌, 전염병이 휩쓸고 지나가는 삶의 폐허를 어떤 휴머니즘적 기대도 없이, 처절한 리얼리티 시선으로 그려낼 뿐이다. 재난의 한복판에서 문제를 해결하고 방도를 찾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저 속수무책으로 당하고 예기치 못하게 주인공을 죽이면서까지 참혹함을 보인다. 5명 중 누가 죽고 살아 남았을까. 또 늑대개 '링고'는 누구를 조준하며 인간들에게 흉포한 이빨을 드러냈을까. (신간인 점을 감안해 내용 및 스포일러는 자제한다.)

'28'이 다소 독특한 건, 바이러스 재난의 흔한 양태를 띄면서 인간의 사투를 그리고 있지만, '개들'이 은근히 많이 나와서 색다른 분위기를 전달한다. 400여 페이지가 훌쩍 넘는 전체 텍스트에서 1/3 정도를 개 이야기에 할애할 정도로, 작가 정유정은 반려동물에 대한 애착을 은연 중에 내포하고 있다. 그래서 그런가, 개들의 이야기에 스토리는 잠시 멈추듯 침잠되고 쭉쭉 나가질 못한다. 초반부터 잘 안 읽히는 것도 이것 때문일지도. 누가 주인공인지 모를 정도로 말이다. 특히 과거 썰매개를 잃었던 서재형의 트라우마엔 이런 개들이 자리잡고 있어 그의 이야기에서 더욱 심화된다. 개들의 이야기만 아니라면, '인수공통전염병'으로 전면 통제되고 무간지옥이 되버린 고도 화양시의 묘사는 영화를 보듯 생생 그 자체다. 일종의 이종배합으로 바이러스 재난의 표피에 개와 인간의 내피가 결합된 조우 및 사투인 것이다.

책 표지 뒷면에 "잔혹한 리얼리티 속에 숨겨진 구원의 상징과 생존을 향한 뜨거운 갈망"이라는 문학적 수사로 이 소설을 빛내고 있다. 크게 이견은 없다. 잔혹한 리얼리티는 정체불명의 바이러스로 발현된 ‘빨간 눈’ 괴질의 창궐이 가져다주는 재난적인 요소이며, 숨겨진 구원은 자신이 증오하고 혐오하던 대상에 대한 역설로 다가오며, 생존을 향한 갈망은 말 그대로 무간지옥이 돼버린 그 곳 ‘화양’에서 살고자 몸부림치는 사투로써, 소설 ‘28’이 그리고자 말하고자 하는 건 바로 이거고, 이 핵심은 한 번도 끈을 놓지 못하고 관류하고 있다. 하지만 텍스트가 부여하는 의미로써 종국엔 '한 인간의 절실한 생의 의미'라는 아젠다는 다소 부풀려진 느낌이다. 가장 증오했던 대상을 구원하고, 가장 혐오했던 대상을 사랑하게 되는 역설이라는 표현 조차도 일종의 수사적 관점으로 다가온다.

재난의 리얼리티에서 무엇을 구원하고 바라는가. 오로지 살고자 바둥되는 사투만이 있을 뿐이다. '우울과 절망'이 내재된 코드로 천착해온 정유정 작가 특유의 소설관이 들어가면서 '28'은 인간애에 대한 담론처럼 변모되는 것이다. 결국 재난을 해결하는 자는 없고, 그냥 속절없이 당하는 참혹한 죽음으로 답보된 구원에 대한 갈망이었나. 다시 한 번 숙고할 대목이다. 그렇다고 어려운 소설은 아니다. 분명 재난의 요소로 인해 대중취합적인 코드가 다분하지만, 그럼에도 작가는 특유의 스타일을 놓치 않았다. '7년의 밤'처럼. 그것이 이 소설의 호불호 지점이 아닐까. 어느 게 호에 속할지는 각자 독자들의 몫이다. 

ps : 왜 제목이 '28'인가? 현대적 감각의 좀비물 <28일 후>와 <28주 후>에서 제목만 따온 것일까?!
정유정 작가에게 가장 궁금하게 묻고 싶은 질문이다. ㅎ

28 - 8점
정유정 지음/은행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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