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방영 전부터 열화와 같은 관심과 화제를 모았던 그 <장옥정>이 월화극에서 포문을 열었다. 다른 건 차치하고라도, 김태희가 제9대 장희빈 역을 맡았다는 그 화제성 때문에 더욱 주목 받았던 사극 드라마다. 아니, 연기력으로 승부를 걸며 당대 여배우만 거쳐간다는 장희빈 역을 김태희가 하다니.. '세상 참 많이 좋아졌다'는 개탄이 나올 법도 했다. 그러나 김태희라고 못 할 건 없다. 사극임에도 현대극 톤이라서 그렇지, 역시나 고운 외모 때문에 의외로 잘 어울렸다. 역사 속에서 각인된 요부 장희빈이 아닌, 조선 최고의 패셔니스타 였다는 그런 설정으로 처음부터 접근한 장옥정이었다. 역관 출신의 딸이라서 돈은 많았기에 부용정에서 거한 패션쇼를 열다가 천출 주제에 어디서 나대나며 어느 마나님에게 혼쭐이 나면서, 조선에서 환생한 '앙드레장'은 그렇게 포문을 열었던 것이다.
이순 또한 볼만했다. 우리의 기억 속에 숙종은 전광렬 등 나이든 군주로 생각하지만 그건 잘못된 거다. 실제 숙종 '이순'은 7살에 세자로 책봉됐으며, 14살에 왕위에 오른 젊은 군주였다.(1647년) 그리고 그 나이에 섭정도 안하고 직접 친정까지 한 임금이었다. 당시 붕당정치가 절정에 달하며 예송논쟁 때문에 힘들었던 그 시기, 변화무쌍한 포스를 지니며 45년 동안 재위에 있었던 숙종 이순. 그야말로 정치력을 완비한 절대군주였던 것. 그럼에도 10대 시절에 왕위에 올랐으니 왕세자 이순은 당연 젊어야 했다. 이런 이순 역에 패기돋는 유아인의 모습은 극과 잘 어울렸다. 사실 더 어린 배역이 할 수도 있었지만, 실제 장옥정과도 3살 아래 연하남이었다는 걸 감안하면 나름의 굿 캐스팅이다. 조만간 아바마마 현종에 이어서 권좌에 오를 그의 카리스마가 기대되는 대목이다.
사실 김태희가 장옥정을 맡은 것도 흥미로운 대목이지만, 지고지순한(?) 인현왕후로만 기억한 후대에게 그 역을 홍수현이 맡은 것도 의외의 포지션이 아닐 수 없다. 사극 <동이>에서 박하선이 했던 그 인현왕후의 모습만 보더라도 이건 천양지차다. 홍수현 자체에 조금은 색스런 기운 때문인지 몰라도, 나름 새침을 떨며 옥정에게 잘난 체 하는 등, 새로운 인현왕후의 모습을 우린 이 드라마에서 보게 될지도 모르겠다. 이와 함께 최무수리 역에 카라의 한승연이 나왔던데.. 훗날 영조를 낳으실 그 숙빈 최씨께서는 너무 대봐라지게 나와서 '뭥미'. 아무튼 장옥정을 홍수현이, 인현왕후를 김태희가 해야할 것 같은 그런 그림에 역발상의 전환은 이루어져 단박에 주목을 끌기에 충분했다. 홍수현이 인현왕후 역이래. 장옥정이 아니고.. ;;
자, 이제부터 본론 얘기. 어제(8일) 1회를 보고서 눈에 띄는 인물이 둘이 있었다. 그건 이순이나 장옥정, 인현왕후가 아니였다. 단순히 이순과 장옥정의 멜로사극이라 할 수도 없는 게, 여기엔 나름의 정치적 인물들이 깔려 있다. 그래서 볼만해지는 거다. 먼저, 동평군 '이항'이 나왔다. 그는 누구일까? 동평군이라.. 그렇다면, 그는 인조와 귀인 조씨에서 낳은 장남 승선군의 아들이다. 지금 JTBC에서 주말 사극으로 방영중인 <궁중잔혹사:꽃들의 전쟁>에서 주인공 소용 조씨(김현주)가 그의 할어머니가 되는 셈. 어쨌든 그는 왕족 출신이다. 그런 그에게 옥정은 순수한 사랑의 결정체로 다가오며 이순과 삼각관계를 그린다는 복안인 것이다. 위의 캐릭터 설명을 보더라도, 이순에게 당숙뻘 되지만 왕의 여자를 넘볼 수밖에 없는 그의 처지가 향후 어떻게 그려질지 주목된다. 전작 <착한남자>에서 문채원을 옆에서 지켜보며 말없이 좋아했던 그 안변이 이번엔 조선의 로맨스가이로 변신해 이순과 대결을 펼치는 것이다. 옥정아, 내 너를 사, 사.. 아무튼 동평군 이항은 이순의 정치적 동반자로 나서며 그를 돕겠지만, 장옥정을 사이에 두고선 비극의 길로 접어든다고 하니 어느 정도 그림은 예상된다. 앙돼..
1회에서 가장 돋보였던 건 누가 뭐래도 천지호, 아니 '장현'이라는 인물이었다. 그 역을 맡은 성동일이 기존의 코믹하고 웃음끼를 싹 뺀 진중한 스타일로 나와 소위 깜놀케했다. 성동일에게도 이런 면이 있었다니 천상 배우이긴 하다. 이른바 미친 존재감을 1회 후반에 보여주며 그는 제대로 칼을 갈았다. 장현은 장옥정의 큰아버지뻘 되는 인물로, 조선 최고의 부를 쌓은 역관으로 배후에서 장옥정을 왕후로 만들어 내는 냉철하고 냉혹한 캐릭터다. 한마디로 "장현은 새끼를 잃고 포효하는 맹수와 같은 캐릭터로 복수와 출세욕, 거기에 장사치의 본능인 물욕까지 이중 삼중의 심리를 내포하고 있는 인물"이라는 설명을 보더라도, 한마디로 장현은 조선의 욕망 덩어리다. 이번 장옥정 연출을 맡은 PD가 작가와 작품을 구상하는 단계 때부터 장현은 성동일의 이미지를 두고 만들었다는 전언이 있을 정도로, 역시나 성동일은 완전 깔맞춤으로 극을 완전 휘어잡았다. 장옥정이 옷가게나 열어 샤방거릴 때, 장현을 통해서 그의 가족사가 펼쳐지며 단박에 주목을 끌었던 것이다.
여기에 정치적인 인물로 복선군이 개입하면서 흥미를 더했다. 복선군은 또 누구인가? 이 대목에서 흥미로워진다. 왜냐하면, 복선군이 좋아했던 여자가 바로 장현의 여식 '홍수'였기 때문이다. 왕족 출신과 정분이 난 홍수는 궁에 잡혀가 고문을 당하다가 자결해 죽음을 맞이했다. 이를 지켜보며 딸을 잃은 장현은 이를 갈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왕권에 도전하기 위해서 복선군과 손을 잡는다는 수순. 그렇다면 이런 설정은 드라마의 픽션일까? 아니다. 이건 실제 역사에 기록된 거다. 정확히 '홍수(궁녀의 별칭)의 변'이라 일컫는 사건이었다.
숙종 즉위 초인 1675년에 이른바 '홍수의 변'이 일어났다. 이는 인평대군(인조의 셋째아들)의 아들들인 복창군 이정과 복선군 이남이 궁녀와 관계했다는 소문이 퍼졌는데, 명성왕후(현종의 정비이자 숙종의 모후)가 그 말을 듣고 부친 김우명에게 복창군 형제들을 탄핵하라고 하였다. 국상 중에 종친이 궁녀를 건드렸으니, 당연히 탄핵의 명분이 되었다. 하지만 명성왕후가 그들 형제를 죽이려고 한 것은 그들 3형제가 남인 세력과 힘을 합쳐 왕위를 찬탈할 위험이 있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실제 당시 복창군, 복평군(이연), 복선군 등 3형제는 정치인들과 깊은 교분을 맺고 있었고, 그들의 외숙인 오정창 등은 남인의 중심 인물이었다. 김우명은 그런 여러 정치적인 부분을 고려하여 함부로 나서지 않았는데, 막상 명성왕후로부터 복창군 형제가 국상 중에 궁녀들과 간통했다는 말을 듣고 숙종에게 그 내용을 고변했던 것이다. 이 일로 숙종운 복평군과 복선군을 가뒀고, 결국 고문을 이기지 못한 두 궁녀가 간통 사실을 자백했는데, 남인들이 대거 반발했다. 당시 남인의 영수이자 영의정인 허적이 숙종에게 김우명이 무고로 궁녀들의 자백을 받아 왕손들을 죽이려고 하니, 오히려 김우명을 벌줘야 한다고 주장하는 등, 남인과 서인 간의 정치적 파벌 싸움은 계속된 것이다.
극 중에서는 이 사건이 숙종이 즉위하기 전, 7년 전으로 회고해 그리며 복선군을 전면에 내세웠다. 시기 상의 문제는 있어 보이나, 그로 인해 여식을 잃은 거상 장현과 사랑하는 정인을 잃은 복선군이 서로 손을 잡고 야심을 극 말미에 드러내며 장옥정 첫회는 그렇게 눈길을 끌었다. 효종과는 다르게 평화롭게 지나간 현종은 힘이 없고, 정비인 명성황후가 서인 세력을 감싸고 버티면서 아들 이순이 권좌에 바로 오르면 볼만해졌다. 옥정과 로맨스는 둘째치고, 당장 장현이 칼을 갈고 있기 때문이다. 조카인 장옥정을 무기로 그녀를 궁으로 들여보내며 전복을 꿈꾼다. 사극 '장옥정'이 겉모습은 화려하게 보일지 모르겠으나, 의외로 정치사극으로 무게감 있게 그려지지 않을까 기대되는 대목이다. 장희빈의 원래 컨셉 '요부'가 그래서 만들어지는 게 아니겠는가. 어쩔 수 없이 역사 속 희생양으로 잉태한 여인네들의 운명같은 삶과 사랑. 저기 궁중잔혹사 인조의 후궁 '소용 조씨'도 그렇고, 앞으로 '장옥정'의 파란만장한 삶을 기대하며 주목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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