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편의 영화 포스터는 나름의 의미가 깊다. 주연 배우들의 표정과 어우러진 모습, 또 그것을 대표하는 문구들은 그 영화의 어떤 상징성으로 다가온다. "이 시대 최고의 맛", "대한민국 최상류층의 숨겨진 이야기"로 대변되듯, 영화 '돈의 맛'은 개봉 전후를 위시해 한껏 주목을 받은 작품이다. 그만의 미장센을 견지하며 독특한 연출법으로 메시지를 던지는 '임상수표' 영화라는 점에서 이미 화제가 됐다. 여기에 최근 칸 국제영화제 경쟁부문에 출품했다는 소식 때문에 연일 화두가 됐었고, 실제 폐막작으로 상영돼 기립박수를 7분여 동안 받았다지만.. 평점은 최하점에 수상은 언감생심 물건너 가버렸다. 혹평이든 어쨌든 해외에서도 나름 주목을 받았던 작품 '돈의 맛'.. 개봉 2주차로 접어들면서 영화 팬으로서 강호도 본 영화 감상에 동참했다. 과연 어떡길래..
사실 갈수록 평이 안 좋다는 소리를 듣고 있었지만, 역시나 그 평은 나름 적중했다. 기대치를 약간은 접고서 본 '돈의 맛'은 제목 그대로를 제대로 못 살렸다. 최상류층 재벌가의 숨겨진 이야기를 한껏 펼쳐냈다고 하지만.. 풀어내고 정곡을 찌르거나 깊이있게 파고들지 못하고 후반에는 혼미해져 컽돈 느낌마저 든다. 이른바 돈의 스펙타클함을 주창한 제대로 된 '돈의 맛'은 자연스럽게 중독돼 빠져든 무서운 욕망을 담아내지 못하고, 보편성을 잃고 지나친 극화가 불러온 마치 한 편의 블랙코미디를 보듯 변죽만 울릴 뿐이다. 거기에 연실 서로가 '모욕'만 던지며 그들의 재력 뒤에 숨겨진 욕정과 치욕 사이가 때꾼할 정도의 저급한(?) 멜로드라마로 치환돼 아쉬움을 남겼다. 결국 이래저래 기대치에 많이 못 미친 것도 사실.. 그래도 임상수표 영화기에 '돈의 맛'은 무언가 끌리는 마성을 지니고 있다. 진한 아쉬움 속에서도 그만의 스타일은 살았던 영화 '돈의 맛'의 시놉시스는 이렇다.
젊은 육체를 탐한 재벌, 그들의 재력을 탐한 젊음! 욕정(欲情)과 치욕(恥辱) 사이...
대한민국을 돈으로 지배하는 재벌 백씨 집안의 탐욕스러운 안주인 ‘금옥(윤여정)’! 돈에 중독되어 살아온 자신의 삶을 모욕적으로 느끼는 그녀의 남편 ‘윤회장(백윤식)’! 백씨 집안의 은밀한 뒷일을 도맡아 하며 돈 맛을 알아가는 비서 ‘영작(김강우)’! 그런 ‘영작’에게 묘한 감정을 느끼며 다가가는 장녀 ‘나미(김효진)’! 돈을 지배한, 돈에 지배된 그들의 얽히고 설킨 권력, 욕정, 집착의 관계들! 이 시대 최고의 맛! 돈의 맛에 중독된 대한민국 최상류층의 숨겨진 이야기가 공개된다!
이미 많이 파급이 됐듯이 본 영화의 시놉시스는 강렬하고 심플하다. 한마디로 말해 군더더기가 없다. 그래서 이야기 자체도 간결하다. 복잡하지 않아서 좋다. 솔까말로 재벌가 백씨 집안 4명의 일상을 담아낸 이야기다. 탐욕스럽고 까칠한 안주인 백금옥 여사와 그런 부인을 모시고 돈에 중독돼 살아왔지만 결국 모욕감에 좌절하는 남편 윤회장.. 이런 재벌 부부를 모시고 뒷일을 도맡아 하며 서서히 돈의 맛을 알아가는 비서 주영작.. 그리고 셋을 나름의 잣대로 바라보며 본 이야기의 화자로써 다가선 장녀 '나미'.. 여기에 싸가지 없는 재벌 2세남으로 나온 아들 윤씨와 이 모든 것을 조종하는 듯한 노회장까지.. 이들 재벌 가족사는 각자 포지션에서 '돈의 맛' 향연을 펼쳐보인다. 하지만 여기서 돈은 말 그대로 돈창고에 수북히 쌓인 돈일 뿐.. 그 맛을 살리지 못했다.
재벌가가 어떻게 지내고 향유하는지 초중반의 그림은 나름대로 주목을 받고 전개되지만.. 후반으로 갈수록 그 힘을 잃고 이죽대는 블랙코미디를 남발하듯, 그들의 애정행각 라이프스타일에 주안점을 둔다. 윤회장은 필리핀 출신의 하녀 '에바'와 섬씽을 이뤄 애욕과 순애보적 사랑 사이를 오가며 백여사에게 모욕감을 안기고, 그런 백여사는 비서 주영작의 가슴팍을 풀어 제끼고 훑으며 하룻밤 정사를 나눈다. (윤여정 왈 "컴온 베이비, 어서.. 오래 길게.."ㅎ) 여기에 아들 윤씨와 스폰서가 함께한 외국 처자들과 질퍽한 섹스파티와 나미와 영작이 나누었던 비행기 안 화장실 정사신까지.. 일종의 치정극 비슷한 멜로드라마로 전개돼 어느 콩가루 재벌가의 저급한 멜로를 보는 듯한 느낌이다. 그렇다고 이런 씬들이 많이 노출된 것도 아니게, 이것이 욕망과 치욕 사이에서 숨겨진 이야기라 하기엔 개연성이나 자연스러움도 떨어진다. 한마디로 와닿지 않는 실체를 잃은 '돈의 맛'이 아닐까 싶다.
그럼에도 본 영화는 '돈의 맛'이라는 제목부터 개봉 전후로 계속 주목을 받았던 작품이다. 유명한 전작들 중 <처녀들의 저녁식사>, <바람난 가족>, <하녀>까지 연출된 그런 작품의 느낌을 알 수 있듯이, 임상수식 영화는 무언가 매니아적이고 메시지적으로 화제를 끌었던 연장선에서 지속돼 왔다. 그런 점에서 전작 '하녀'보다 더 음탕한 2012년 상반기 최고의 화제작이라 위명을 떨며, 정작 '하녀2'가 아니었나 싶었지만, 전체적인 느낌은 그 '하녀'보다 못한 느낌이 짙다. 이정재와 서우 사이에 낀 하녀 전도연이 대히트를 못 쳤어도, 마지막 씬은 나름의 미장센으로 압권이었다. 그 '하녀' 속 어린 나미가 커서 '김효진'이 역을 맡았고, 그녀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게 '돈의 맛'를 풀어가는 이야기 방식이다. 나름 중간자적 입장에서 자기 집안의 작태를 까발리기도 한 섹시한 처자의 고민은 바깥에서 바라보는 시선의 어떤 표출인 셈이다. (재벌들이 다 그렇지 뭐.. 어디 가겠어.. 식)
이 시대 최고의 맛을 자처한 '돈의 맛', 욕망 보다는 변죽만 울린 임상수식 쩐의 맛..
여기에 10년차 비서 주영작으로 분전한 김강우는 돈의 맛에 중독돼가는 캐릭터를 선보였다. 그런데 그냥 안방마님을 잘못 만나 모욕감에 몸 버리고 아씨 마님을 통해서 치유되는 일종의 젊은 육체로 대변될 뿐, 그가 중독된 고민의 흔적은 휘발되고 변주될 뿐 중심에 서지 못했다. 연기톤도 변화가 없는 게 김강우의 주영작은 제대로 발현되지 못한 느낌이다. 대신에 중견 배우 윤여정과 백윤식의 존재감은 역시나 돋보였다. 전작 '하녀'에서 늙은 하녀 역 윤여정이 그대로 환생하듯, '돈의 맛'에서 보여준 안주인 백금옥 여사는 젊은 육체를 탐하는 몸을 사리지 않는 연기를 선보이며 재벌가의 까칠하면서도 도도한 이면을 제대로 표출했다. 그리고 돈에 중독돼 모욕감으로 점철된 인생의 마침표를 찍으며 애욕과 로맨스를 오갔던 백윤식 또한 그 특유의 목소리에 존재감을 과시했다. "벌벌 떨면서도 다들 받데.." 와 '모욕'으로 대표되는 그의 찰진 대사들은 귀에 착착 감긴다.
이렇듯 영화는 4명의 주요 캐릭터를 통해서 그려낸 일종의 재벌가 뒷담화다. 그런데 그 뒷담화가 색다른 소재와 신섬함으로 다가오질 않는다. 이미 익숙한 드라마 속에서 많이 차용된 그런 이야기들의 또다른 발현일 뿐, 임팩트한 맛은 떨어진다. 더군다나 '돈의 맛' 제목이 주는 그 어떤 스펙타클함을 담아내지 못하며, 그 맛에 중독된 욕망적 이야기 보다는, 초반에 강렬했던 포지션이 그냥 각자 4명의 저급한 멜로로 치닫는 아쉬움으로 남는다. 선명하고 호기로운 시작 뒤에 후반으로 갈수록 모호하고 혼미해진 감상적 마무리로 요상한 여운을 남겼다. 물론 중간마다 삼성가와 쌍용차 노조, 장자연 사건 등을 떠올리는 사회성 짙은 풍자를 담아내긴 했어도, 결국 영화가 주창하며 걸고자 했던 중독된 '돈의 맛'은 제대로 향유되지 못하고 휘발돼 변죽만 울리며 그 어떤 욕망의 정점과 궁극을 보여주진 못했다.
그럼에도 그런 지점에서 이죽거리는 특유의 화법으로서 블랙코미디를 섞은 임상수식 '쩐의 맛'이라 본다면 크게 아쉬울 대목도 없다. 어차피 중독된 '돈의 맛'이라는 게 한번에 끝낼 수 있겠는가.. 돌고 도는 유산의 상속처럼 대물림 되고 반복적으로 순환돼 인생사를 지배하는 계속된 욕망의 발현체일 뿐이다. 그리고 우리는 그 과정에서 서로에게 '모욕'을 안겨주고 있다. 영화 속 윤회장이 말한다. "돈 원없이 썼지. 그런데 그게 그렇게 모욕적이더라고.." ㅎ
예고편 : http://movie.naver.com/movie/bi/mi/mediaView.nhn?code=84189&mid=177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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