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목극 중에서 절대 웃기지 않는 드라마 '적도의 남자'가 본 궤도에 진입했다. 그 어떤 야망과 욕망이 빚어낸 정통극답게 그것이 가져올 복수극의 서막을 알리며, 어제(4일) 방영된 5회는 주목을 끌기에 충분했다. 역시 과거 '부활' 때처럼 '엄포스'의 부활인지, 주인공 선우 역을 맡은 엄태웅의 모습은 실로 대단했다. 그렇다. 선우는 아버지 용배(이원종)의 죄를 덮기 위해서 또 미래를 위해서 가차없이 죽일려는 친구 장일(이준혁) 때문에, 바다 속에 수장될려다 기적적으로 살아나 목숨을 건졌다. 대신에 그는 시력을 잃었다. 그 사고로 오랫동안 혼수상태였던 선우는 가까스로 의식을 회복했지만 실명선고를 받게 된 것이다. 지난 주 4회 말미에서 "불켜, 어두워, 의사불러.. 어두워!!"를 계속 외쳤던 선우는 “꿈속에서는 모든 것이 보이는데 눈을 뜨면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며 자신의 처지를 알게 된다.
'으.. 이 일을 어떻게 해야한담? 내가 왜 실명을.. 누가 날 이렇게 만들었을까?' 혼란스럽고 갈팔질팡해 사시 같은 눈을 부라리며 그는 그렇게 꿈과 현실 속에서 힘들어했다. 한마디로 기억이 오락가락해 헤맨 것인데.. 초반에 엄태웅의 이런 리얼 연기가 극에 몰입감을 제대로 선사했다. 결국 선우는 친구 선미 등의 도움을 받아 예전 옥탑방 집으로 오게 된다. 이때부터 그의 생활은 말이 아니다. 어느 말없는 정신병자처럼 가만히 있고, 대꾸도 안하고, 마치 바보처럼 멍만 때리는 등, 엄포스는 바보 선우가 되버렸다. 하지만 그는 바보가 아니다. 이미 둔기를 자신의 뒤통수를 후려친 장일에 대해서 똑똑히 기억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던 날씨 좋은 어느 날, 자신의 켵을 돌봐준 동네 친구에게 편지를 쓰게 한다. 누구에게? 바로 장일에게 쓴 거. 선우가 불러주면 그 친구가 대필을 하는 것인데.. 사실 특별한 내용은 없었다. '잘 지냈니? 나 선우야, 법대에 들어갔데메.. 축하해! 넌 큰 인물이 될 꺼야, 날 너무 걱정하지마, 다음에 보자 친구야' 이런 식으로 그냥 평범한 내용이었다. 이렇게만 쓰고 동네 친구에게 보내달라고 한 후.. 그가 사라지자.. 선우는 혼자서 다시 읊조린다. "그런데 장일아, 안 쓴게 있어. 난 모든 걸 기억한다. 네가 왜 그랬는지 알 것 같애"라고 무섭게 운을 띄운 후 "난, 널 용서할 수 없다. 죽는 날까지 너를 절대 용서하지 않을 거다"라며 장일에 대한 복수심의 서막을 알렸다.
정말 이 씬은 소름이 돋을 정도로, 반전의 묘미답게 꽤 의미심장한 연출이었다. 엄청난 복수심에 이글이글 타오르는 선우가 아닌, 생의 모든 것을 놓아버린 그 상태에서 불현듯 찾아온 기억의 저편에서 끄집어낸 친구 장일에 대한 무서운 경고장인 셈이다. 결국 이렇게 기억이 돌아온 선우는 모든 것을 감춘채 연기를 하며, 다른 친구들 도움으로 걸어나와 서울에 있는 친구 장일에 집에 들어가게 된다. 한마디로 '적과의 동침'이 시작된 것이라 할 수 있는데.. 장일에 입장에서는 얼마나 무서웠을꼬.. 자신이 죽이려던 친구와 같이 살게 됐으니 이건 불안 그 자체다. 하지만 선우가 앞이 안 보이니, 애써 태연하게 대할 뿐이다. 그러면서 둘의 묘한 신경전 대화..
먼저 선우가 포문을 연다 "우리가 마지막으로 본 게 언제였지" 묻자 놀라는 장일.. 그런데 장일은 도리어 "선우야! 사고 난 것은 기억이 안 나니" 그러자 선우는 "그날 엄청 추웠던 거 같애"라며 "내가 경찰서에 가다가 사고가 난 거라는데.." "사람들이 날 속이는 거 같애"라며 장일을 향해 무서운 경고를 날린다. 태연한 척 장일은 "아닐꺼야.."나며 물러나자.. 선우는 썩소를 날린다. 정말 엄태웅의 이런 면모가 있었다니.. 이건 뭐.. 미스터리 사이코 드라마도 아니고, 정말 나름의 씬스틸이 아니었나 싶다. 그전에 편지 내용 장면에서도 그렇고, 5회에서 주목할만한 최고의 두 장면이었다.
적남 5회, 엄태웅의 리얼한 실명연기와 친구에 대한 복수극의 서막을 알리다.
이런 와중에 어느 복지관을 찾은 선우는 이날, 과거 한때 알고 지냈던 지원(이보영)을 만나게 되는데.. 우연히 마주친 남자가 선우임을 알고 그에게 달려갔던 지원은 과거 첫만남이 워낙 강렬해 선우를 기억하고 있었다. 그래서 반가운 마음에 먼저 인사를 건넸다. 하지만, 시력을 잃은 선우는 지원을 알아볼 수가 없었다. 지원은 선우를 다시 만나게 돼 기쁜 마음이었지만, 순간 선우가 시력을 잃은 것으로 보이자 충격에 휩싸였고.. 이때 선우는 뒤를 돌아보며 '저 아세요?' 모드로 "저한테 물으신건가요?"라며 응수.. 이 둘의 만남은 다시 그렇게 시작됐다. 장일과 연인 사이로 발전할 수 있는 그 찰나에 불현듯 다가선 이 남자 선우로 인해 삼각관계가 묘하게 흐름을 암시하는 대목이다. 무당집 딸내미 선미 또한 가세하면 이건 사각관계.. ;;
이렇게 해서 '적도의 남자'는 5회에서 사고로 시력을 잃고 깨어나 횡설수설하다가, 점차 기억을 찾아 친구 장일에 대한 복수극의 경고장을 날린 선우의 모습이 꽤 임팩트하게 나오며 눈길을 끌었다. 그렇다고 장일이 불안에 떨며 그를 피한 것도 아니고, '적과의 동침' 모드로 돌입해, 둘의 대결이 어떻게 펼져질지 기대를 모았다. 그와 함께 지원이 시력을 잃은 선우에게 호감을 가지면서 장일과의 삼각관계도 묘하게 형성되는 등, '적남'은 예상치 가능한 그림들을 풀어놓았다. 다만 그런 설정이 진부하더라도, 소위 때깔좋은 그림의 연출과 극에 자연스럽게 녹아든 배역들이 있어 볼만하다. 시력을 잃고 헤매지만 정신만은 온전한 남자 선우 역 엄태웅 이하, 불안함 속에서도 냉정을 찾는 장일 역 이준혁과 그리고 두 남자 사이에서 사랑을 찾게 될 지원 역 이보영, 존재감 중견 3인방 김영철 이원종과 이재용 등, 주조연을 넘나들며 앞으로 '적남'이 기대되는 이유다.
그것이 흔한 복수극 양상으로 치닫고 이렇게 서막을 알리며 눈길을 끌었지만..
어쨌든 정통극답게 주인공 선우와 장일, 두 남자의 이야기가 몰입감 좋게 펼쳐지기에 더욱 주목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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