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급 승진을 앞둔 최반장(손현주)은 회식 후 의문의 괴한에게 납치를 당한다. 위기를 모면하려던 최반장은 우발적인 살인을 저지르게 되고, 승진을 위해 사건을 은폐하기로 결심한다. 이튿날 아침, 최반장이 죽인 시체가 경찰서 앞 공사장 크레인에 매달린 채공개되고 대한민국이 발칵 뒤집힌다. 자신이 저지른 살인 사건을 담당하게 된 최반장은 좁혀오는 수사망에 불안감을 느낀다. 최반장은 자신의 실수를 덮기 위해 사건을 조작하고 재구성한다. 그러던 어느 날, 경찰서로 의문의 전화가 걸려오고,한 남자가 자신이 진범이라며 경찰서에 나타나는데…
“내가 죽인 시체가 다시 내 눈 앞에 나타났다”
“진짜는 지금부터야. 네가 어떤 놈인지 왜 그랬는지 내가 알아야 되겠어”
“제가 죽였습니다. 최반장님을 불러주세요”
“진짜는 지금부터야. 네가 어떤 놈인지 왜 그랬는지 내가 알아야 되겠어”
“제가 죽였습니다. 최반장님을 불러주세요”
제목을 나름 심도있게 내걸은 '악의 연대기'는 한마디로, 한국형 범죄 스릴러의 공식을 그대로 따르는 영화라 할 수 있다. 범인이 누구인지 끝까지 정체를 숨기며 그를 잡는 데 집중하는 게 아니라, 처음부터 잡고 시작하거나 혹은 다른 이가 범인으로 몰려 그 난관을 헤쳐나가는 설정과 흡사하다. 여기서 '악의 연대기'는 형사과 수사반장을 범인으로 내몰고 그의 심리적 압박에 초점을 맞춘다. 장르적으로 '추적 스릴러'라 했지만, 쫓고 쫓는 긴박한 추적의 묘미는 사실 전무하다. 영화가 집중하는 건 우발적으로 살인을 저지르고 승진을 위해 그 사건을 은폐하려면서, 심리적 압박에 시달리는 최반장의 모습에 할애하며 분위기를 고조시킨다. 여기에 막내 형사 동재(박서준)가 최반장의 증거와 단서를 쥐고 있는 키로 내세우며 위기로 내몬다.
중반까진 꽤 볼만하다. 스타일리쉬한 액션이나 추적이 있는 건 아니어도, 나름 촘촘하게 짜여진 이야기를 통해 최반장의 심리적 고군분투를 그리며 주목케 만들기 때문이다. 범인이 된 최반장 역에 손현주의 시시각각 불안한 얼굴과 표정이 그것을 대변하며 극적 분위기를 직조하고 전달하는데, 후반부로 갈수록 반전의 강박으로 인해 극이 오히려 힘을 잃는다. 자신이 진범이라고 자처해 나타난 김진규(최다니엘)로 인해 전환점을 맞이하지만 그 활용면에서 지나치게 설명적이라 여운을 주지 못한다. 그렇게 드러낸 정체로 인해 마지막은 때꾼해질 정도. (스릴러에도 신파를?!)
사실 본 영화가 내걸은 홍보가 패착일 수도 있다. 의외의 흥행에 성공한 '숨바꼭질'의 손현주와 '끝까지 간다' 제작진이 의기투합한 2015년 가장 강렬한 추적스릴러라 내걸었지만, 그 묘미는 '추적자' 보다 못하고, '끝까지 간다'식의 블랙 코미디한 재미를 주진 않는다. 본 영화가 주목하는 건, 그런 미장센 대신 어떤 악의 대물림으로 희생된 사연에 집중해서 그린 탓으로 보인다. 그럼에도 한국형 범죄 스릴러가 취하는 레시피 공식이 이것저것 다 담겼다. 누군가 우발적으로 범인이 되면서 은폐하려 들고, 진범이 나타나 압박 대결을 펼치고, 그 사연의 포장으로 인해 반전의 강박까지, '악의 연대기'는 그렇게 충실한 한국형 범죄 스릴러로 안착된다.
한줄 평 : 잡고부터 시작하자, 혹은 범인으로 몰려 고군분투하자, 식의 한국형 범죄 스릴러의 공식을 그대로 답습한다. 이야기는 나름 짜지게 구성해 범인이 된 형사반장의 심리적 압박에 할애하며 긴장을 주지만, 반전의 강박이 의외의 재미를 반감시킨다. 복수를 또 다르게 변주했는데도 말이다.
대리운전, 일용직 등을 전전하던 일범에게 신용불량자라는 딱지는 번번이 그의 발목을 잡는 족쇄다. 아픈 딸의 치료비를 위해 어머니들에게 각종 건강식품과 생활용품을 파는 홍보관 ‘떴다방’에 취직한 일범(김인권)은 자신의 처지가 한심하다. 그런 그에게 홍보관 점장 철중(박철민)은 “우리가 자식보다 낫다”며 당장 처자식 먹여 살리려면 목숨 걸고 팔라 한다. 그의 말처럼 오히려 즐거워하는 어머니들을 보며 일범 역시 보람을 느끼기 시작하고 그러던 중, 자랑스런 검사 아들을 뒀지만 자식에게 짐이 되기 싫어서 홀로 외로이 노년을 보내던 옥님이 홍보관을 찾아와 일범을 만나게 되는데…
“세상 어떤 자식이 매일 엄마한테 노래 불러주고 재롱 떨어줘?”
그곳에 가면 엄마도, 아들도 울고 웃는다!
언뜻 향수를 풍기는 '약장수'는 젊은 가장의 무게를 다룬 휴먼 코드의 가족영화다. 아픈 어린 딸과 책망하는 아내를 둔, 생활고에 찌들고 신용불량자에 변변한 일자리를 구하지 못한 젊은 아빠 일범. 그의 어깨는 항상 처져 있다. 친구의 소개로 일명 '떴다방' 홍보관에 들어가면서 일상은 더욱 고단해진다. 아줌마와 할머니들 앞에서 노래를 부르고 춤도 추면서 쇼를 하는 등 물건 강매로 고심에 빠진다. 우직하고 순박한 성격의 일범은 그나마 버티면서 지내는데, 홀로 외롭게 사는 옥님을 만나 살뜰히 챙기면서 점장과 갈등하며 위기로 몰린다. '약장수'는 실제 지방을 돌며 버젓히 운영되는 홍보관의 실태와 민낯을 세세하게 보여준다. 조치언 감독이 실제 경험하고 취재한 떴다방의 살풍경을 사실적으로 담아낸 장기가 중반까지 시선을 잡아끈다.
그 속에서 일범은 적응하는데 힘들어하지만 점차 먹고 사는 문제로 소위 '엄마'들과 하나되며, (검사 아들을 두고 장한 어머니상까지 탔지만) 홀로 외롭게 지내는 옥님을 만나 성심을 다하면서 점장과 부딪혀 위기를 맞이한다. 영화는 한마디로 생활고에 찌든 소시민 가장의 이야기를 담아낸 정서를 내세운다. 그런데 이야기 전개나 연출 등에 있어 투박한 편이다. 사연의 깊이 또한 단선적이며 상투적이라 큰 감흥을 주기 보다는, 현 우리세대의 소시민적인 고달픈 현실을 보여주는 데 주력한다. 나아가 부모와 자식 간의 불통으로 인한 불효사회에 경종을 울리는 독거노인의 고독사 문제를 제기하는 등 나름의 소명을 담아낸다. 마지막 일범이 노인의 죽음 앞에 흔들리고, 다시 전국을 떠돌며 진정한 약장수로 나설 때 모습은 무언가 묵직한 여운마저 남긴다. 이젠 밑바닥 삶의 정서와 고달픈 생활형 연기가 익숙해진 김인권이라 더욱 그러하다. 그 모습이 이 영화를 대변하듯이.
한줄 평 : 전국을 도는 홍보관 일명 '떴다방'의 민낯을 나름 사실적으로 묘사하며 주목을 끈다. 약장수로 대변되는 그들을 통해 우리시대 고달픈 소시민의 삶과 고독사 문제마저 담는다. 생존에 목마른 역할이 좋다는 김인권의 마지막 약장수의 모습은 리얼 그 자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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