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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호인, 한 인간의 궤적에 관한 드라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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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 없고, 빽 없고, 가방끈도 짧은 세무 변호사 ‘송변’
그의 인생을 송두리째 바꿀 다섯 번의 공판이 시작된다!

1980년대 초 부산. 빽도 없고, 돈도 없고, 가방끈도 짧은 세무 변호사 송우석(송강호). 부동산 등기부터 세금 자문까지 남들이 뭐라든 탁월한 사업수완으로 승승장구하며 부산에서 제일 잘나가고 돈 잘 버는 변호사로 이름을 날린다. 10대 건설 기업의 스카우트 제의까지 받으며 전국구 변호사 데뷔를 코 앞에 둔 송변. 하지만 우연히 7년 전 밥값 신세를 지며 정을 쌓은 국밥집 아들 진우(임시완)가 뜻하지 않은 사건에 휘말려 재판을 앞두고 있다는 소식을 듣는다. 국밥집 아줌마 순애(김영애)의 간절한 부탁을 외면할 수 없어 구치소 면회만이라도 도와주겠다고 나선 송변. 하지만 그곳에서 마주한 진우의 믿지 못할 모습에 충격을 받은 송변은 모두가 회피하기 바빴던 사건의 변호를 맡기로 결심하는데...

“제가 하께요, 변호인. 하겠습니더"

시국에 별 관심이 없는 판사출신의 법조인 송우석은 부산에 내려와 터전을 잡는다. 학연과 지연이 판을 치는 곳에서 고졸 출신으로 가방끈이 짧아 홀로서기를 선언, 돈이나 벌자는 목표하에 수완을 발휘해 부동산 등기 업무로 이름을 알리고, 좀더 확장해 세무변호사로 승승장구한다. 그때마다 고깝게 보는 법조인들이 있지만 10대 건설 기업의 스카우트 제의까지 받으며 전국구 변호사로 이름을 날린다. 전두환 신군부 정권이 들어선 1980년. 시국이 어수선하고 이듬해 각종 데모와 시위 소식이 들려도 우석에겐 남의 일처럼 다가온다. 그런데 자신이 7년 전 밥값 신세를 지며 정을 쌓았던 국밥집 아들 진우가 뜻하지 않은 시국사건에 휘말려 종적을 감춘다. 진우의 어머니 순애는 아들을 살려달라며 애걸한다. 국보법 사건에 휘말리기 싫었으나, 구치소 면회에서 맞닥뜨린 진우의 반병신 모습에 충격을 받은 송변은 법조인으로서 한 인간으로서 도저히 묵과할 수 없는 야만에 반기를 들기 시작한다. 모두가 회피하기 바빴던 시국 공안사건에 본격적으로 변호를 맡으며 그의 인생은 송두리째 바뀐다. 어떻게, "제가 하께요. 변호인. 제가 하겠습니니더." 변호인은 그렇게 시작된 것이다.



1. 1981년 부림사건과 故 노무현 대통령 : 영화 '변호인'은 현대사의 굴곡을 다룬 일종의 사회극으로 기능한다. 신군부 정권이 들어선 1980년대 초 각종 데모와 시위가 난무하던 그때. 80년 5월 광주민주화 운동 이후, 81년 서울지역 학림사건에 이어 부산까지 접수하라는 상부의 지시로 그곳에서도 학림사건이 터졌으니, 이른바 '부림사건'이다. 보다 자세한 내용은 아래로 대신한다.

1981년 7월 서울지역 대학생 모임을 반국가단체로 몰아 무더기로 구속했으니, 이른바 ‘학림사건(學林事件)’이다. 같은 해 9월 부산에서도 비슷한 일이 벌어졌다. 부산의 학림사건, ‘부림사건(釜林事件)’이다. 부산지검 공안 책임자 최병국 검사의 지휘에 따라 공안 당국은 사회과학 독서 모임의 학생, 교사, 회사원 등 22명을 ‘정부 전복을 꾀했다’는 이유로 1981년 6월부터 다음해까지 잇따라 영장 없이 체포해 20일~63일간 불법 감금, 고문하고 기소했다. “관련 피고인들은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뒤엎고 사회주의와 공산주의국가를 건설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의식화 교육을 되풀이하고 학원 시위를 주동했다는 이유로 구속됐다.” 경향신문(1982. 10. 27)

그러나 실상은 달랐다. 노무현 자서전 <운명이다>에서는 “구속자 대부분 1979년 이흥록 변호사가 만든 부산양서조합 회원들이었다”고 전한다. “개업식 축하모임, 돌잔치, 송년회를 한 것이 모두 집회로 규정됐고 계엄법, 국가보안법, 집시법 위반 혐의가 적용됐다. 이들이 실제로 한 일은 독서 모임을 하면서 자기들끼리 정부를 비판한 것이 전부였다.” <운명이다> 中 무고한 이들은 고문을 통해 공산주의자로 조작됐다. 1998년 발간된 <부산민주운동사>에 따르면 물고문, 통닭구이, 몽둥이 구타는 예사였고, 생판 남남끼리도 경찰의 각본 속에서 공범으로 둔갑했다. 부산에서 변호사로 활동 중이던 노무현 전 대통령은 이때 첫 인권 변호를 맡은 것을 계기로 인권 전문 변호사의 길에 들어섰다. 후일 그는 부림사건을 “삶을 바꿔놓은 사건”이라고 회고했다. 
 
이것이 영화 변호인의 모티브다. 실제 있었던 시국 공안사건 '부림사건'과 그 사건에 개입해 변호를 맡았던 노무현 전 대통령(이하 노통)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그러나 노통의 일대기를 오롯이 담아내는 데 주력하지 않는 '드라마'에 있다. 이른바 속물 변호사 송우석이 어떻게 변모해 인권변호사로 길을 걷게 됐는지 초점을 맞춘다. 러닝타임 2시간에 반은 돈을 버는 변호사로, 뒤엔 인권을 지키는 변호사로 그려지는 데, 그 과정의 추이가 충분히 공감가게 몰입을 선사한다. 속물이라지만 돈에 환장하는 게 아닌, 나름 인간적인 면을 지닌 인물이 진정 사람을 구하는 일을 하게 된 드라마로 천착된 것이다. 이것이 노통의 오마주에 대한 환기라 할지라도 그 색깔은 짙지 않고, 도리어 법조인으로서 책무와 시대정신이 무엇인지 보여준다. 그것이 변호인의 메시지일 테다.

2. '설국열차'&'관상'에 이어 방점 찍은 '송강호' : 올해만 벌써 설국열차와 관상에서 존재감을 과시했던 충무로의 대표 흥행배우 송강호는 올해가 뜻깊을지도. SF와 사극에서 현대사를 다룬 시대극까지 그만의 아우라를 뽐내며 변호인으로서 방점을 찍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주인공 송우석 변호사 역을 맡으며 속물이지만 웃음 코드를 장착한 인간적인 면모를 과시하고, 인권변호사로 변모해 누구보다 진중하게 변호를 할 땐, 그 옛날 '넘버3'의 조연이 맞나 싶을 정도다. 이후 수많은 작품을 통해서 조폭과 형사, 킬러와 뱀파이어 신부 등 다양한 캐릭터를 변주한 송강호는 변호인에서 원톱으로서 활약한다. 그러다 보니, 송우석의 동선에만 초점을 맞춰져 그 주변인물의 묘사에 깊이가 떨어진다. 송변의 아내는 평면적이고 사무장 역 오달수는 잠잠하게 코믹 때문에 있는 것 같고, 의식있는 사회부 신문기자로 나선 이성민의 울분은 생뚱맞은 게 있다. 그러나 국밥집 순애와 진우 모자는 극 전개상 의미가 잘 부여됐다. 특히 진우 역을 맡은 임시완이 그들에게 끌려가 팬티차림에 갖은 고문을 당하는 두 차례의 씬은 놀라울 정도. 첫 접견 때 송변을 보고 "제가 잘못했습니다. 죽을 죄를 지었습니다"하며 홀린 듯 미친 놈처럼 쏟아내는 언사는 임팩트한 장면 중 하나다. 그럼에도 송강호를 빼놓고선 변호인은 성립되지 않는다. 중반 이후 다섯 차례 공판이 벌어지는 법정씬도 자연스럽게 소화하는 등, 그만이 보여준 사실적 연기는 일종의 울림까지 제공한다. 앞선 두 영화에서 보여주지 못한, 진지한 모습의 송강호를 변호인을 통해서 만날 수 있을 것이다.

3. 한 인간의 궤적에 관한 인생드라마 : 송우석 변호사에 포커스를 맞춘 이야기는 일종의 인생드라마다. 실제 부림사건과 노통을 모티브로 했지만, 영화에선 그 사건을 직접 지칭하지 않고 다르게 부른다. 그래서 노무현에 대한 서사라긴 보단 개인의 각성과 성장담 같은 구도다. 처음부터 법조계에서 신망받는 변호사가 아닌, 돈을 쫒는 속물변호사에서 인권변호사로 변모된 과정 속에 심리 변화는 간단명료하다. 성취감과 허탈함, 소외감과 분노, 미안함과 사명감, 그리고 마지막에 작은 승리까지, 한 인물이 걸어온 발자취를 두 시간 안에서 시대정신과 맞물리게 그린 장기가 돋보인다. 그만큼 영화가 내건 인물의 서사에 초점을 맞추며 삶의 궤적에 관한 이야기를 몰입좋게 다룬 것. 혹여 현대사를 다룬 영화 '화려한 휴가'나 '26년'과 궤를 같이 하는 것 같지만, 시대의 암울이 들어가 있더라도 변호인은 다르다. 특정인의 삶을 모티브로 삼았지만, 주인공은 그가 아니어도 상관없다. 다른 인물로 그릴 수도 있다. 그만큼 1980년대의 첨예한 시대에서 가장 구체적이고 보편적인 모습으로 나선 한 남자의 인생드라마는 그렇게 완성된다. 그런 의미로 다가서고 본다면, 영화 '변호인'은 말 그대로 깊고 의미있게 다가 올 것이다. NEW의 안목이 이번에도 통할지 주목됨과 동시에..

예고편 : http://movie.naver.com/movie/bi/mi/mediaView.nhn?code=101901&mid=22143#tab



PS : 변호인이 어찌 보면 송강호의 영화라 할 수 있지만, 눈에 띄는 인물 중 차동영 역에 곽도원이 있다. 그는 공안검사와 협작해 부림사건의 고문경찰로 나온 일종의 안타고니스트다. '범전'에서 보여준 검사의 이미지는 장난이었다. 곽도원 특유의 무서운 눈빛과 말투는 고문실과 법정을 뒤흔든다. 그전에 "니들이 애국을 알아" 식으로 송변을 한차례 패주는 등 포스를 자아낸다. 그렇다고 차동영을 비롯한 검사나 판사를 사회악처럼 악역으로 그리는 건 아니다. 그들이 믿는 건 오로지 '국가'고 송변은 '국민'이다. 다섯 번의 공판 중에 증인으로 채택된 차동영과 송변의 심리 변론은 법정씬 중 압권이다. 차동영이 반말투에 호기롭게 국보법을 더 공부하라며 국가를 운운할 때, 송변이 헌법 제1조 2항을 언급한 "대한민국 주권은 국민에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국가란 국민입니다!" 사자후는 그렇게 쏟아진다. 이게 바로 변호인의 '머니 숏'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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