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의 얼굴에는 세상 삼라만상이 모두 다 들어있소이다!
얼굴을 보면 그 사람의 모든 것을 꿰뚫어보는 천재 관상가 내경(송강호). 처남 ‘팽헌’(조정석), 아들 ‘진형’(이종석)과 산속에 칩거하고 있던 그는 관상 보는 기생 ‘연홍’(김혜수)의 제안으로 한양으로 향하고, 연홍의 기방에서 사람들의 관상을 봐주는 일을 하게 된다. 용한 관상쟁이로 한양 바닥에 소문이 돌던 무렵, ‘내경’은 ‘김종서’(백윤식)로부터 사헌부를 도와 인재를 등용하라는 명을 받아 궁으로 들어가게 되고, ‘수양대군’(이정재)이 역모를 꾀하고 있음을 알게 된 그는 위태로운 조선의 운명을 바꾸려 한다.
머리는 하늘이니 높고 둥글어야 하고
해와 달은 눈이니 맑고 빛나야 하며
이마와 코는 산악이니 보기 좋게 솟아야 하고
나무와 풀은 머리카락과 수염이니 맑고 수려해야 한다
이렇듯 사람의 얼굴에는
자연의 이치 그대로 세상 삼라만상이 모두 담겨져 있으니
그 자체로 우주이다.
- <관상> 내경의 대사 中 -
1. 관상쟁이가 끼어든 팩션극 : 개봉 전부터 한껏 기대를 모았던 사극영화 <관상>이 전격 개봉했다. 동양적 사상과 정서에 바탕을 둔 '상학'(相學)을 전면에 내세워 역사의 소용돌이 한 가운데 세운다. "사람의 얼굴에는 세상 삼라만상이 모두 다 들어있소이다!"로 귀결되는 관상학을 모토로 관상가가 영화 속 주인공이다. 영화 제목은 극의 소재이자 주제를 관통하는 일맥의 지점이지만 이 모든 것을 관류하지 않는다. 관상쟁이 '내경'은 촌부로 처남과 함께 어촌 자락에서 그럭저럭 지내다가 연홍의 제안으로 한양으로 입성. 조선 최고의 관상가로 이름을 날린다. 이내 그를 겁박하는 정체모를 무리의 압박 속에서 내경의 관상 수완은 조정에까지 미쳐 좌상 김종서의 눈에 들고 문종 앞에 알현한다. 이들의 정적인 수양대군을 감시하고 역모 조짐을 조기에 발본색원해 막아보자는 심산. 호랑이와 이리로 귀결된 김종서와 수양대군 맞대결 속에서 내경은 좌상 편에 서서 역사를 거스리려 한다. 그가 수양대군을 막을 수 있을 것인가. 어차피 거친 파도를 막을 수 있는 건 세찬 바람 뿐. 바람을 읽지 못하면 시대는 그렇게 흐른다.
영화 '관상'은 전형적인 팩션극이다. 역사적 사건의 팩트와 픽션의 조합으로 시대를 풀어낸다. 주로 사극에서 많이 차용되는 또 하나의 장르로 색다른 건 아니다. 실력파 관상가로써 보다는 저잣거리 느낌의 '관상쟁이'를 내세워 역사 속으로 집어 넣고 있는 것. 문종 말년과 어린 단종 즉위, 그 과정에서 수양대군이 김종서와 황보인 등을 제거하고 정권을 거머쥔 '계유정난'(1453년)이라는 확고한 역사적 팩트가 중심에 서 있다. 그렇다면 한낱 관생쟁이가 이런 역사적 소용돌이에서 어떻게 기능할 것인지가 관전 포인트다. 한마디로 역사 속에 가공된 한 사람이 끼어든 팩션인 셈. 하지만 사람의 얼굴을 통해서 길흉화복을 점치는 '관상'은 중반 이후 잘 활용되지 않는다. 범과 이리로 대표되는 대쪽 김종서와 야망가 수양대군 관상에서 더 이상 꺼낼 소스가 없는 것. 역사적 팩트인 계유정난을 통해 수양대군이 정권을 거머쥔 사건은 알고 보는 드라마인 점에서 흥미나 긴장감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김내경의 운명이 극 말미에 중요한 텐션으로 떠오른다. 역모를 막고자 했으나 막지는 못했다. 그렇다면 그는 수양대군에게 죽었을까. 하나뿐인 아들 진형마저 잃었을까. 관상으로 모든 것을 풀기엔 애초에 부족했을지도. 그냥 계유정난을 그린 또 하나의 영화표 드라마인 것이다.
2. 젊은 수양대군 보는 재미 : '관상'은 여러 스타급 배우들이 나오면서 외적으로 자연스럽게 홍보된 영화다. 눈치로 관상 보는 기생 연홍 역에 김혜수, 주인공 관상가 김내경 역에 송강호와 문제적 동반자로 나선 처남 팽헌 역에 조정석, 나라와 군왕을 지키려는 김종서 역 백윤식과 내경의 아들 진형 역에 이종석까지, 가히 사극판 '도둑들'이라 할만한 적시적소 6인6색의 배우들 얼굴을 메인 포스터 전면에 걸며 주목을 끌고 있다. 하지만 극으로 들어가면 얘기는 달라진다. 김혜수가 맡은 연홍의 역할은 기대 보다 미미했고, 내경의 처남 팽헌 역 조정석은 극의 코미디를 담당하며 특유의 애드립 등으로 재미를 주지만 극에 녹아들진 못했다. 대신 역사의 소용돌이를 일으킨 장본인이란 점에서 막판 흥미로운 설정의 배역으로 기능한다. 관상쟁이 아버지와 다르게 관상을 믿지 않는 내경의 아들 진형으로 나온 이종석은 대세남으로 곁가지로 넣은 느낌이고, 김종서 역 백윤식의 아우라는 역시 명성대로 기본.
무엇보다 극 중에서 눈에 띄는 건 수양대군 역할을 맡은 이정재다. 실제 계유정난 당시에 수양대군은 37살이었다. 그만큼 늙지않게 젊었다는 얘기다. 김종서가 일흔 살인 걸 감안하면 한마디로 신·구의 권력 싸움으로 역사는 기록하고 있다. 그런데 후세에는 수양대군하면 <왕과 비>에서 임동진, <인수대비>에서 김영호, <공주의 남자>에서 김영철 등을 떠올리는 등, 다소 나이든 배역으로 인해 '노땅'으로 각인된 게 사실. 하지만 '관상'은 젊은 수양대군의 역동적이고 카리스마 넘치는 모습으로 주목을 끈다. 런닝타임 2시간이 넘는 동안, 딱 1시간이 지나고서 진짜 수양대군이 나타날 때 포스는 이정재가 아니고선 보여줄 수 없는 컷이기도 하다. 이정재 특유의 비웃음이 내재된 관상이 야심가다운 수양대군 모습을 포착하는 등, 이젠 마흔 살이 된 나이에도 여전히 '태양은 없다'에서 얼굴을 지닌 배우 이정재. '관상'의 비주얼은 그가 담당했다해도 과언이 아닐지다. 연홍이 아니고...
3. 제2의 '광해'가 될 수 있을까 : '관상'을 보는 시선은 작년에 천만 관객을 모은 <광해, 왕이 된 남자>를 떠올리게 만든다. 두 장르 다 사극영화로 나섰기 때문. 스타파워 이병헌과 CJ 배급사의 힘으로 천만을 넘었다 해도, '관상'은 어벤져스급으로 나선 '광해2'라 할 만하다. 하지만 배급력이 좋다 할지라도 단도직입적으로 천만은 힘들어 보인다. <연애의 목적>과 <우아한 세계>를 통해서 관객과 평단에게 나름 좋은 평가를 받은 한재림 감독의 복귀작으로 한껏 기대를 모았지만, 우선 첫 뚜껑에 대해선 회의적인 평가가 많은 것 같다. '기대작은 아니다'는 평가가 대세인 듯 나 또한 크게 다르지 않다. 우선은 영화 자체가 긴 편이다. 120 분 안으로 줄였다면, 좀 더 컴팩트하게 그렸다면, 도리어 관상의 임팩트가 부족했던 이야기 때문에 알고 보는 계유정난 코드에서 관상쟁이가 무엇을 할 수 있는지를 제대로 보여주는 데 부족하지 않았나 싶다. 앞서 1시간은 내경과 팽헌의 마당극을 보는 듯한 느낌에다, 수양대군이 나오고 난 뒤 1시간 여는 정치사극으로 나섰지만 그 조차도 큰 묘미는 없다. 다만, '황표정사'(黃票政事:왕자들이 추천한 사람 가운데 왕이 적임자를 골라 임명하던 인사제도)로 대표되는 정치 속 소재의 활용과 엔딩의 마무리는 깔끔한 편. 이래저래 화제작인 만큼 '관상'의 인기는 스타성 배우들 때문이라도 계속될 듯. 그러나 흥행의 측면에서 '광해2'를 노리는 것 보다는 계유정난을 담은 또 하나의 시대극으로 보는 게 온당하다. 여기서 '관상'은 그것을 풀어내기 보다는 극적 요소로 가미된 것일 뿐, '관상' 조차도 역사를 거스를 순 없었던 것이다.
본 예고편 : http://movie.naver.com/movie/bi/mi/mediaView.nhn?code=93728&mid=21249#tab
PS : 수양대군의 장자방은 누가 뭐래도 한명회. 극 중에서 한명회를 누가 했을까.
탈바가지를 쓰고 머리를 삐닥하게 세운 자. 극의 앞과 뒤를 책임진 인물. 그가 바로 한명회다. 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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