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흡기로 감염_ 감염속도 초당 3.4명_ 치사율 100%
2013 여름, 사상 최악의 바이러스가 대한민국을 덮친다!
밀입국 노동자들을 분당으로 실어 나른 남자가 원인불명의 바이러스에 감염되어 사망한다. 환자가 사망한지 채 24시간이 되지 않아 분당의 모든 병원에서 동일한 환자들이 속출한다. 사망자들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지만 분당의 시민들은 무방비상태로 바이러스에 노출된다. 감염의 공포가 대한민국을 엄습하고, 호흡기를 통해 초당 3.4명 감염, 36시간 내 사망에 이르는 사상 최악의 바이러스에 정부는 2차 확산을 방지하기 위해 국가 재난사태를 발령, 급기야 도시 폐쇄라는 초유의 결정을 내린다. 피할 새도 없이 격리된 사람들은 일대혼란에 휩싸이게 되고, 대재난 속 사랑하는 이들을 구하기 위한 사람들과 죽음에서 살아 남기 위한 사람들은 목숨을 건 사투를 시작하는데…
아래는 스포일러가 내포돼 있으니 주의 요망..
1. 감염 공포에서 확장된 집단의 광기 : 영화 <감기>는 감염 재난 공포의 스케일을 키운 한국형 재난 블록버스터다. 기존 할리우드에서 자주 봐온 각종 재난물에 한국의 상황을 미묘하게 결합시키면서 주목을 끄는 방식이다. 이미 감염의 공포는 영화적 얘기만은 아니다. 익숙하게 사스, 조류독감, 신종플루, 구제역 파동까지 우리 사회는 이런 공포를 경험한 바 있다. 영화가 노리는 건, 그런 공포에서 확장된 집단의 '광기' 같은 걸 그려내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시작은 원인불명의 바이러스에 감염된 어느 밀입국 노동자로부터 출발, 그로 인해 여러 사람이 알게 모르게 감염되고, 기하급수적으로 분당 시민들이 하나 둘 쓰러져 간다. 피를 토하는 심정으로 곳곳에서 무방비 상태로 바이러스에 노출되며 사망자가 속출하자 정부가 나선다. 2차 확산 방지를 위해서 분당 폐쇄 조치를 단행해 감염자와 비감염자를 격리 수용하면서 사투를 벌이게 된다. 누구라도 할 것 없이, 그곳을 빠져나오기 위해서. '감기'가 중후반 달려가는 지점이다. 감염의 공포에 질린 대다수 사람들이 한 곳에 모이면서 집단의 극단적인 광기를 보이며 총을 겨누기까지 한다. 심지어 인간 살처분이라는 극악한 방법까지 쓰면서 방점을 찍는다. 영화가 판타지하게 보여주는 최고의 '공포'인 셈이다.
2. 인물 보다는 극단으로 치닫는 상황 묘사 : '감기'가 여타 재난물, 특히 바이러스 공포로 인한 묘사에 있어서 탁월해 보이는 건, 사람들의 얘기를 중점으로 다루지 않는다. 남녀 주인공을 맡은 장혁과 수애가 각각 구조대원과 감염내과 전문의로 나오지만, 이들이 사람을 구하는 '영웅주의'에 빠져 활약하지 않는다. 그들도 감염자와 비감염자를 오가며 그 속에서 여자 아이를 구하는 데 혼신의 힘을 쏟을 뿐이다. 영화는 감염 재난의 거대한 울타리 안에 갇혀버린 사람들이 어떻게 죽는지 살고자 하는지 각종 상황 묘사에 치중한다. 구조대원 장혁은 감염되기 전 도로 매몰현장에서 구해준 수애와 딸을 어떻게든 지키고 살리려고 애쓰고, 수애는 항체를 구하려고 딸에만 올인하는 모성애 강한 엄마로 나선다. 그외 힘든 상황에서도 툭툭 재미없는 유머를 던지는 유해진과 전직 고위 군관 출신으로 폭동의 주동자로 나선 마동석, 불법 밀입국자 운반책으로 각종 상황에서 깽판만 놓는 이희준 조연들은 광기의 중심에서 훼방꾼 정도로만 기능할 뿐이다. 재밌는 건, 극단으로 치닫는 상황 묘사가 점점 판을 벌린다는 점이다. '도시 폐쇄 조치- 격리 수용- 바리케이트 설치- 그곳을 넘으면 사살 - 이도 저도 아니면 전원 몰살로 전투기 폭격'까지 이런 일련의 과정들이 숨가쁘게 막판을 향해 달려가며 불균질한 재난의 '야심'까지 보인다. 전시작전통제권까지 운운하며, 그것을 끝내 막아낸 차인표 대통령의 활약까지 가서야 한숨을 돌린다. 왠지 과유불급으로 느껴지는 이야기의 판도다.
3. '딸'을 구하는 데 치중한 가족애의 폐단 : '감기'는 두 부류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직관적으로 보여주는 건, 감염 재난 공포의 확산에 내몰리면서 살고자 대규모 시위대로 변모한 사람들의 광기, 그것을 처리하고 대처하는 정부의 모습을 보여주는 데 주안점을 두면서 소위 윗대가리들의 작태를 풍자한다. 그 속에서 감염의 실체와 확산을 막는 데 주요한 타겟은 수애의 딸 '미르'에게 귀결된다. 처음엔 그냥 귀여운 꼬마 아이였으나, 혼자 살아남은 밀입국 노동자와 초반에 접촉하게 되면서 미르는 서서히 생명이 위태롭게 된다. 이 사실을 알게 된 수애는 딸을 포기하지 않고, 비감염자 구역에 같이 놓고선 살리려고 노동자가 항체를 갖고 있다는 걸 알게 되면서 딸에게 투여. 이때부터 미르는 세상을 구하는 유일무이한 구세주가 된다. 장혁과 수애는 그런 미르를 지키는 수호자로써, 종국엔 정부까지 어린 소녀에게 겨누던 총을 거두면서 광기의 사태는 일단락 된다. 그만큼 묘한 이질감을 선사하는 건, 감염 재난의 공포와 광기 속에서 가족애로 귀결되는 '딸 구하기'가 요상한 앙상블로 버무려져 있다는 것이다. 완벽한 감염 공포마저도 따스하게 감싸 안으려는 강박에 의한 휴먼과 감동 코드. 한국영화의 고질적인 병폐가 아닐런지. 그럼에도 영화 '감기'는 기존 '괴물'과 '연가시'에서 진일보하게 나서며 판타지 성을 걷어내고, 감염 재난의 상황을 영화적으로 확장시킨 극단적인 색채와 사실감을 더해 생생히 그려냈다. <비트>와 <태양은 없다>, <무사> 이후 10여년 만에 메가폰을 잡은 김성수 감독의 결기를 보여준 셈. 결국 감염 보다 무서운 공포란, 자신이 아무것도 못하고 내버려질 때 나오는 광기가 아닐까. '감기'는 그런 영화다.
예고편 : http://movie.naver.com/movie/bi/mi/mediaView.nhn?code=72522&mid=21001#tab
ps : '감기'는 소설가 정유정 작가의 신작 <28>과 너무 닮아 있다. 둘다 전염병을 소재로 하는데, 이미 책을 접한 나로써는 소설 속 이미지와 사건들이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소설에서도 정체불명의 바이러스로 고립되고 폐쇄된 화양 도시가 나온다. 그 속에서도 군인들이 사람들을 전면 통제한다. 특이한 건 개들도 같이 나오는데 항체도 없어 '인수공통전염병'으로 귀결되면서 화양도 무간지옥이 되버린 이야기다. 소설은 그렇게 잔혹한 리얼리티의 서사와 구원의 메시지를 텍스트로 부활시키며 인기를 아직도 끌고 있다. 이 중에서 주요하게 매칭이 되는 건 구제역 파동으로 가축을 살처분 했듯이, '28'에선 무작위로 개들을 생매장해 버린다. 그리고 '감기'에선 사람들을 살처분한다. 그게 바로 이 영화의 '머니 숏'이다. 어떤 사건 보다도 그 자체가 압도적인 공포로 다가오게 만든다. 마치 난지도에서 거대한 쓰레기를 치우듯이. 그런데 그 속에서 허우적댄 장혁은 왜 감염이 안 된 걸까. 그렇게 막 뒹굴었는데도.. 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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