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극을 바탕으로 본격 항일드라마의 탈과 본색을 갖추고 있었어도, 사실 '각시탈'은 그렇게 무거운 톤의 드라마는 아니였다. 도리어 초딩들도 함께 볼 수 있어서 부담없이 때론 재밌게 보는 드라마 정도로 인색돼 수목극에서 1위로 수성. 적어도 지금까지 전개된 그림들은 일본 순사들을 시원스럽게 때려잡는 각시탈 히어로의 정체와 활약에 초점을 맞추면서, 두 남자 주인공 이강토와 기무라 슌지의 맞대결을 중심으로 그려지며 눈길을 끌어왔었다. 하지만 극이 후반을 달리면서 적지적소에 배치된 캐릭터들로 인해서 이젠 터질 게 터져버렸다. 각시탈의 정체가 들킨 것은 물론이요, 시청자들을 간만에 분노케하는 그림을 어제(9일) 20회에서 그려내며 단박에 주목을 끌었으니.. 강호도 순간 빡침이 왔었다. 안 그런가? 간단히 3가지로 내용을 요약해 본다.
1. 채홍주는 이강토의 정체가 각시탈임을 알게 됐다.
이강토 의심병의 극강을 보여준 기무라 슌지가 먼저 알아챌 줄 알았는데.. 그 몫은 채홍주에게 돌아갔다. 두 맞수의 대결은 좀더 기다려야할 판이지만, 과거 자신을 구해준 남자의 정체를 알게 될 때의 '멘붕'이 홍주에게 먼저 찾아온 것. 내심 이강토를 '나의 남자'로 점찍어 놓고, 자신을 키워주고 몸담고 있는 키쇼카이에 입당원서까지 내줄 판이었지만, 그게 쉽지가 않았다. 신임 경찰서장 무라야마 요시오(김명수)와 경무국장 기무라 타로(천호진) 등의 반대가 만만치 않았기 때문. 더군다나 강토는 조센징이라는 이유로 또 저간에 근무태만 등으로 경찰서에서 쫓겨난 신세였다. 그래서 홍주는 슌지를 찾아가 따져묻는 통에 그만 그가 각시탈일지도 모른다는 소리에 뭥미?!
얼마전 금화정에서 대판 결투를 벌일 때 각시탈이 팔에 상처를 입었다는 가츠야마의 말을 듣고 혹시나 했던 채홍주 '우에노 주리'였다. 바로 이강토를 불러서 조용히 술자리를 마련하며 이런저런 소회를 털어놓는다. 둘이 나름 애틋한 모드로 돌변하나 싶었는데.. 강토 잔에 미리 수면제를 탄 채로 마지막에 '당신을 위하여!'를 외치는 건배를 들었다. 강토는 바로 쓰러졌고, 오른쪽 소매를 걷어 팔에 상처를 본 순간.. 그녀는 제대로 깜놀했다. 니가 정녕.. 니가 정녕.. 각시탈이었단 말인가.. 나의 남자로 점찍어 놓은 니가 나의 적이란 말인가.. 오 마이 갓.. 홍주는 무지 혼란스러울 것이다. 이걸 죽여 살려.. ㅎ
2. 기무라 슌지의 찌질함과 의심병은 언제쯤 끝날 것인가?
기무라 슌지가 가면 갈수록 조금은 소위 '병맛'이 되는 것 같다. 조선 아이들을 성심껏 가르치던 착하고 젊은 일본 선생님은 아비 빽으로 계급장을 달고 부터는 180도 바뀌었다. 물론 조선인 출신의 이강토를 막역지우로 알며 그렇게 지내왔지만, 각시탈에게 형을 잃고 나서부터 그를 잡는데 혈안이 된 슌지였다. 그러면서 서서히 여러 정황상 이강토가 각시탈이 아닌가를 의심하는 작태는 지리할 정도로 수차례나 무한루프처럼 반복됐다. 의심하다가 자책하고 다시 의심하고, 그러면서 말미엔 주 레파토리 "반갑다 각시탈"을 호기좋게 외치는 그였지만, 항상 놓치기 일 쑤. 결국 파면됐다가 아비 타로의 빽으로 다시 복귀되는 등, 슌지는 그렇게 계속 활약중이다. 욕본데이..
그런 가운데, 부하 고이소로부터 언질을 들었던 게 결정적이었다. -(이 놈은 이 얘길 이제서야 하는지도 참..)- 자기 형 켄지가 강토의 어머니를 죽였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 그걸 왜 이제서야 말하냐며 채근했지만, 순간 슌지는 이상한 낌새가 있음을 눈치챘다. 이런 사실을 강토가 알고 있었다면 당연히 복수를 위해서 자기 형을 죽인 각시탈은 이강토? 아니면 모른 척하면서 일부로 그렇게 행동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슌지는 급속도록 짱구를 굴렸다. 하지만 그렇게 친하던 친구 어머니의 죽음과 관련된 사실을 알고도, 위로는커녕 운전대를 잡고 가는 강토에게 넌 그걸 알면서도 왜 복수하지 않고 가만 있나며 속을 긁는 치졸함을 보였다. 이에 빡친 강토는 누가 죽인 걸 넌 아느냐며 다그쳤고, 슌지는 이거 왜 이러실까.. 도리어 차분하게 역정내지 말라는 태도를 보인다. 제대로 골탕을 먹이는 거지..
그런데 이 뿐만이 아니였다. 서커스단 목단이를 찾아가 강토 앞에서 목단이를 켜안으며 한참을 놓아주지 않았다. '넌 내꺼야. 내가 지킬꺼야' 하면서.. 내 여자라고 보란듯이 강력하게 찜을 한다. 친구가 사랑했던 여자 아니 나도 사랑했던 여자, 지위와 힘을 앞세워 여자를 쟁취하려는 그런 찌찔한 작태에 이강토는 아무말없이 속쓰리게 쳐다볼 수밖에 없었다. 내가 계급만 높았어도.. 아무튼 이강토가 각시탈인 걸 어서 눈치나 채시길 바란다. 라라에게 그렇다고 해놓고 그 넘의 결벽증 때문인지, 아직도 무한루프중인 그 몹쓸 의심병.. 과연 몇 회에서 슌지는 이강토의 정체를 알게 될까? 참으로 궁금해지는 대목이다.
3. 공분을 산 위안부 징집 묘사, 분노의 각시탈 조선 처녀들을 구했다.
자, 오늘의 하이라이트다. 서두에서 잠깐 언급했듯이, 본 드라마를 보면서 이렇게 분노의 어그로를 끌어올린 적이 있었나 싶다. 몇 회 전 22주년 한일합방 기념식장의 욱일승천기가 있는 곳에서 기미가요를 불러도 그런 느낌은 별로 없었다. 왜? 그들 입장에선 잔치였으니까.. 하지만 우리 입장에서 아픈 역사가 그려지면 그것처럼 다시금 불편함과 함께 치미는 분노감마저 일게 만든다. 19회에서 드디어 욱일승천기를 찢으면서 나름의 쾌감을 불러 일으키더니, 1회 만에 쾌감은 다시 싹 사라졌다. 그래도 사실 항일드라마다보니, 언제쯤 이 얘기가 안 나오나 싶었는데, 드디어 '위안부' 문제가 거론된 것이다. 그것도 단순히 몇 분동안 그려진 것도 아니고, 우리 조선 처자들이 어떻게 징집돼 갔는지 등이 나름 디테일하게 묘사돼 20회 내용 중에서 중심을 이룰 정도였다.
바로 조선총독부에서 일본제국 건설의 선봉장 황군을 위로하는 군 위안부 모집을 명령하기에 이르고, 이에 따라 조선 곳곳에 '간호부'를 빙자한 군 위안부 모집문이 붙으면서 일본 정부의 개입이 아닌 민간 기업을 통해서 모집한 것처럼 위장했다. 하지만 이런 영문도 모르는 조선 처녀들은 한 달 거금의 50원 월급과 공부도 시켜준다는 말에 혹해서 "간호부에 지원하겠다"며 너도나도 나서기 시작했던 것이다. 이런 건 극동 서커스단 처자들에게도 들이닥쳤고, 목단이는 무언가 낌새가 이상한 걸 눈치챘다. 급기야 강토를 통해서 간호부가 아닌 위안부 모집임을 알게 되면서 신청한 동료들을 빼돌리다가 걸려서 순사들에게 린치를 당했다. 결국 다른 쪽에선 영문도 모른 채 위안부로 호송돼 가는 조선 처자들 앞에 나타난 각시탈.. 안 나타면 이건 히어로도 아니지. 암..
이때부턴 그의 날쌘 발차기와 쇠퉁소질에 다들 나가떨어지며 조선 처자들을 위기에서 구해냈다. 그 어린 선화까지 끌려갔으면 정말 큰일날 뻔 했다. ;; 그러던 중 어디서 각시탈을 비켜간 총알 한 발.. 채홍주가 조선 처자들 운반책으로 나서며 기다리던 그 장소에서 각시탈과 조우하게 된 것이다. 의례 "반갑다 각시탈"을 외쳐야 할 슌지 대신에 라라 우에노 주리가 딱 버티고 있었던 것. 이에 이강토는 흠칫 놀라고, 홍주 또한 아무말 없이 의미심장한 독백으로 마무리 짓는다. "제발, 내가 당신을 살려준 걸 후회하게 만들지 마" 캬.. 이 넘의 사랑이 또 문젠기라. 사랑에 빠지게 만든 이 남자를 한 번은 용서할테니.. 이후엔 나도 책임을 못 진다.. 정도랄까. 의심병으로 무한루프중인 슌지 보다 먼저 각시탈의 정체를 알게 된 채홍주의 앞으로의 모습이 기대되는 대목이다.
아무튼 이런 임팩트한 20회 마무리와 동시에, 조선의 어린 처자들을 간호부라 속이며 위안부로 징집하는 묘사는 다시금 공분을 살 만했다. 특히 타로 집에서 오랜 식모살이를 했던 어느 할매의 손녀딸까지 멋 모르고 잡혀가는 상황이 더욱 그랬다. 기무라 타로가 퇴근해 들어오는 길에 밖에서 할매가 곧장 물었다. 거길 가도 좋으냐고.. 그러자 타로는 흠칫 어린 처자를 쭉 훑어보면서 거긴 가도 좋은 곳이야.. 할 때는 정말.. 그런데 내막도 모르고 할매와 손녀딸이 부등켜안고 좋아라 할땐 분노가 섞인 슬픔마저 치밀어 오르더라는.. 어쨌든 이런 위기의 조선 처자들을 각시탈 이강토가 구하면서 위기를 모면했고, 홍주에겐 정체를 드러내며 스스로 위기를 맞이했으니, 앞으로 남은 각시탈의 이야기는 더욱 흥미로워졌다.
그리고 제작진들에게 부탁.. 위안부 얘기는 다시 꺼내지 말기를.. 볼때마다 빡치니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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