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라는 게 판타지한 측면이 다분하면서도 우리네 삶을 투영시킨다는 드라마적인 부분도 간과할 순 없다. 물론 그런 드라마 조차도 판타지가 되긴 하지만서도.. 어쨌든 영화는 영화일 뿐, 오해하지 말자로 하기엔 때론 아주 직관적으로 우리네 일상을 담아내는 드라마를 보면 낯설지 않게 꽤 동질감을 느낀다. 그런 점에서 여기 두 편의 영화는 꽤 닮았다. 마치 독립과 상업영화 사이를 오가며 우리의 일상을 그려낸다. 하나는 무미건조하게 여행지에서 일상을 얘기하고, 하나는 직업 속에서 일상의 탈출을 말한다. 바로 <다른 나라에서>와 <나는 공무원이다>라는 영화 속 얘기다. 물론 이런 강호식 짧은 견해가 놓친 부분도 있고 다른 관점과 충돌해 다를 수 있겠으나, 적어도 두 영화는 '일상'(日常)이라는 관점에서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는 건 확실해 보인다. 그것도 아주 드라이하면서도 일상적인 드라마답게 나름의 주목을 끌었으니, 간단하게 두 영화를 정리해 본다.
세 명의 안느가 <다른나라에서> 머문 신비로운 날들
모항이란 해변 마을로 어머니(윤여정)와 함께 빚에 쫓겨 내려온 영화과 학생(정유미)이 불안해서 시나리오를 쓴다: 안느라는 이름의 세 여인(이자벨 위페르)이 등장하고, 그들은 차례로 모항으로 내려온다. 첫 번째 안느는 잘 나가는 감독이고, 두 번째 안느는 한국 남자(문성근)를 비밀리에 만나는 유부녀이고, 세 번째 안느는 한국여자에게 남편을 빼앗긴 이혼녀이다. 모항 갯벌 앞에는 한 펜션이 있고, 그곳엔 주인부부를 대신해 펜션을 지키는 딸(정유미)이 있고, 해변 쪽으로 가면 항상 해변을 서성이는 안전요원(유준상)이 있다. 안느들은 모두 이 펜션에 숙소를 정하고, 그 펜션 딸의 작은 도움을 받게 되고, 또 모두 해변으로 나가 그 안전요원을 만나게 된다.
홍상수식 드라마는 여전.. '다른 나라에서'온 한 여자의 발자취 속 무미건조함..
이 영화를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역시 홍상수'라는 점이다. 그래서 홍감독의 스타일이 그대로 들어간 드라마로 천착된다. 알다시피 주요하게 인기를 끌었던 작품만 보더라도 <돼지가 우물을 빠진 날>부터 시작된 <강원도의 힘>, <생활의 발견> 이후에도 <하하하>, <옥희의 영화>, <북촌방향>, 그리고 이번에 <다른 나라에서>까지.. 그만의 견지대로 영화는 일상을 조망한다. 사실 특별한 거 없이 카메라의 시선을 따라 군상극을 그리는 타입이다. 그렇다고 많은 사람들이 나오는 것도 아니다. 보통 5~6명이 부딪히고 만나고 헤어지고 다시 그 만남 속에서 주고받는 일상의 대사와 선문답, 그리고 빠지는 않는 술과 야부리.. 지리할 정도로 성인들의 일상을 그대로 담아낸다. 직업군도 그렇게 다양하지 않게 유명하지 않은 영화감독이나 교수, 작가 등을 세워놓고 인생을 관조하듯 그린다. 안 그런가?!
그리고 이번에 홍상수의 페르소나를 자처한 '유준상'을 라이프가드로 세워놓고 '다른 나라에서'온 50대 미모의 아줌마와 대치시킨다. 이야기는 화자가 있고, 그 화자로 인해 세가지 타입의 '안느'를 말한다. 감독으로서 유부녀와 이혼녀로서 그녀를 오롯이 카메라에 담는다. 라이트하우스(등대)를 줄곧 찾는 그녀의 이유를 던지며 사람과 대화를 이끌어 간다. 그리고 여기에 세남자가 꼬여든다. 하나는 같은 감독으로써 그녀를 대하고 존경하고 아름답다며 끈덕지게 접근한다. 누가? 권해효가. 영화내내 젊음을 상징하는 듯한 안전요원 유준상을 통해선 그녀의 일탈을 조심스럽게 예견한다. "디스 이즈 송 포유"라며 그녀 앞에서 기타치며 노래부르는 남자.. 그리고 안느를 너무나 사랑한 나머지 쫓아온 중년남자 문성근. 그의 키스신이 말해주듯 그는 사랑에 목이 탄 듯 싶다.
이렇게 여기서도 소위 수컷들의 성인식 연애 유형이 어김없이 나온다. 소위 어떻게 해볼려는 심산이겠지 하면서도.. 영화는 선을 넘지 않으려 한다. 전작들과 달리 계속 그녀에게 확인받고 싶어하고 장담하고 책임질려는 모습이 다소 우스꽝스럽게 그려지기도 한다. 그 속에서 안느는 누굴 선택하는 문제가 아닌, 그저 자신의 발견인 자아를 찾는 것인지 몰라도, 조금씩 변주되면서 더 넓은 곳을 향해가며 일종의 순례자처럼 그리고 있다. 그렇다면 이건 일종의 '페니미즘' 영화일지도 모르겠다. 그러면서 영화 속 분위기는 그래왔듯이, 꽤 무미건조하다. 파격의 격정없이 드라이하게도 일상을 담아낸다. 그것이 다시 제자리로 돌아온다 해도, 홍상수식 드라마는 그렇게 완성된다. 일상에 대한 그만의 시선이 녹아들듯, 술과 담배가 빠지지 않는 그 현장에서 끊임없이 만나고 헤어지고 무언가를 발견할려는 이런 선문답은 도대체 언제까지 계속되는 것인지.. 이번 '다른 나라에서'도 그 해법은 아직도 진행중이다. 다음 작품에서도 그러하겠지..
예고편 : http://movie.naver.com/movie/bi/mi/mediaView.nhn?code=86335&mid=17718#tab
모든 것이 완벽했다! 그.놈.들.이 오기 전까지! “니들이 암만 떠들어 봐라 내가 흥분하나? ”
자신의 삶과 직업에 200% 만족하며 살아가고 있는 남자 한대희(윤제문). 그는 마포구청 환경과 생활공해팀에 근무하는 10년차 7급 공무원이다. 웬만한 민원에는 능수능란, 일사천리로 해결하며 평정심을 유지하는 그의 좌우명은 “흥분하면 지는 거다”, 일명 “평정심의 대가”로 통한다. 변화 같은 건 ‘평정심’을 깨는 인생의 적으로 여기고 퇴근 후 나름 여가생활을 즐기며, 10년째 TV 친구인 유재석, 경규형과 함께 잘 지낸다. 그는 삼성전자 임원 안 부러운 대한민국의 자랑스런 공무원이다. 그러던 어느날, 그의 앞에 홍대의 문제적 인디밴드가 나타나는데...
평정심의 대가 VS 문제적 인디밴드.
그는 과연 흥분하지 않고, 인생 최대의 위기를 극복할 것인가!
제목 그대로 '나는 공무원이다'다. 그런데 그렇게 치열해 보이는 공무원 타입은 아니다. 나름 안전빵으로 복지부동하며 구청7급 공문원으로 모나지 않게 살고 있는 이 남자 한대희. 예능본좌 삼종세트 '강호동 유재석 이경규'를 벗삼아 노총각으로 살아온 이 남자의 일상은 한마디로 다람쥐 쳇바퀴 돌듯 드라이하다. 그래도 어디서 상식공부는 많이 했는지, 해괴한 잡지식이 많은 이 남자에게 어느날 홍대에서 굴러먹던 인디밴드가 찾아온다. 처음엔 소음 민원 때문에 이들과 조우를 하면서, 그들이 칩거할 연주공간을 알선하다가 돈 먹고 튄 업자 때문에 한대희 집 지하실로 들어온 인디밴드.. 이들과의 불편한 동거가 시작되면서 일상이 그려진다. 칼출퇴근을 모태로 삼아온 그에게 있어서 시도때도없이 들려오는 지하실로부터 소음은 나름의 곤욕이었다. 흥분을 참아내며 아래로 내려가 얘기하고, 또 계속 듣다 보니, 자기안의 꿈틀대는 뭔가를 발견한 한대희.
나는 공무원이다, 세대간 간극을 말하며 일탈 혹은 작은 변화를 담고 있다.
과거 다락방에서 쳐박아두었던 예전 팝아티스 레코드판과 서적을 뒤적이며 음악에 점차 빠져든다. 그러는 사이, 인디밴드 사이에서 불협화음이 나면서 2명이 탈퇴하는 사태가 벌어지고, 그 자리에 기타 한 번 안 잡아본 그가 베이스 기타를 매만지며 드라이한 공무원은 연주자로 돌변한다. 급기야 공무원 일과 속에서 무리하게 콘테스트에 참가하는 용기를 내는데.. 과연 한대희는 인디밴드 속에서 무엇을 찾고 얻은 것일까.. 혹시 잃은 건 없을까.. 이렇게 이 영화는 일상의 신선한 취미가 안겨준 일련의 과정들을 가감없이 그려낸 드라마다. 작위나 강박도 없이, 이 남자가 처한대로 갈등하고 흡수되고 결국엔 소통하며 일상의 일탈을 맛보게 된다. 그렇다고 이런 일탈이 마치 송강호 주연의 영화 <반칙왕>을 보듯이 이중생활로 그려지는 건 아니다. 남들 부러울것 없는 안전빵의 굴곡없는 공무원 생활 속에서 인디밴드와 만남은 신선한 충격 이전에 일상에 찾아든 작은 울림같은 변화였다.
그래서 영화 '나는 공무원이다'는 그런 일상의 작은 변화에 초점을 맞추며 그리고 있다. 어떻게 보면 생활밀착형 코미디이면서도 일종의 우화같은 느낌이다. 주로 악역에 도가 튼 연기파 배우 '윤제문'의 나름 무심한 듯 귀요미 공무원으로 변신은 찰지게 잘 어울렸고, 인디밴드 구성원들도 우리시대 젊은 88만원 세대를 대표하듯 모양새는 좋았다. 특히 최근에 <화차>와 <유령> 등을 통해서 나름의 인지도를 알린 '송하윤' 처자의 모습은 시크하면서도 블링블링해 눈길을 끌기에 충분했다. 옆에 긴 기럭지 그 청년도 눈에 띄었고..
아무튼 본 영화를 통해서 보면 그렇다. 보통 '일상의 일탈'을 말하고 그렇게 꿈꾼다지만.. '나공'의 스타일은 심한 격정 없이도 젊은세대와 중년세대의 간극을 좁히는 그 지점을 소통과 대세라는 아이콘으로 말하며, 전혀 드라마틱하지 않은 드라마로 일상을 그려내며 주목을 끄는 방식이다. 극중 한대희는 평정심으로 유지할려고 노력하며 "흥분하면 지는 거라고" 얘기하지만.. 그렇게 흥분은 우리네 삶 속으로 불현듯 찾아오기 마련이다. 그땐 어쩔 수 없다. 그냥 즐기면 된다. 아니 그러한가.. ㅎ
예고편 : http://movie.naver.com/movie/bi/mi/mediaView.nhn?code=83731&mid=17471#ta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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