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만의 색깔과 장기로 무장한 판타지한 영화 장르에 있어서 '팀 버튼'을 빼놓고선 말할 수 없다. 여기에 그의 페르소나를 자처한 '조니 뎁'과 만들어낸 앙상블은 그 자체로 환상적인 조합이다. 영화 팬이라면 알다시피 '가위손'부터 시작해 '이상한 나라의 엘리스' 그리고 이번에 '다크 섀도우' 영화까지 무려 8번째로 스크린을 판타지하게 수놓는다. 그러니 팬들은 물론 무릇 기대치가 있기 마련.. 그런데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그 기대치를 못 미친 느낌이 다분하다. 아닌가?! 팀 버튼의 건재함은 여전했지만, 초기작을 답습하며 신선함은 떨어지게 고집스런 색감만으로 판타지한 세계를 그렸으니, 이도저도 아니게 평타친 느낌이다. '마녀와 뱀파이어'가 주는 이 고전틱한 판타지 이야기는 흔한 클리셰와 기시감 속에서 러블리한 로맨스도 아닌, 코믹과 위트도 넘치지 않고, 그냥 스타급 배우들을 데려다 그려낸 팀 버튼식의 비주얼일 뿐.. 전체적으로 사실 별로였으니 이 영화의 시놉시스는 이렇다.
마녀를 잘못 건드린 바람둥이, 200년 후 뱀파이어로 깨어나다!
18세기를 주름잡은 유명한 바람둥이 바나바스 콜린스(조니 뎁)는 마녀 안젤리크(에바 그린)에게 실연의 상처를 준 죄로 저주를 받아 사랑하는 연인을 잃고 생매장당한다. 그리고 200년 후, 뱀파이어로 깨어난 그는 웅장했던 옛 모습은 온데 없이 폐허가 된 저택과 거기에서 자기보다 더 어두운 포스를 내뿜으며 살고 있는 후손들을 만나게 된다. 가뜩이나 새로운 세상이 낯설기만 한데 설상가상, 현대 생활에 완벽하게 적응한 마녀 안젤리크가 다시 그를 찾아와 애정공세를 펼친다. 끈질긴 유혹에도 불구하고 그가 온몸으로 거부하자 안젤리크는 갖지 못할 거라면 차라리 부셔버리겠다며 콜린스 가문과의 전쟁을 선포하는데.. 마녀의 과격하고 지독한 사랑을 물리치기 위한 소름 돋는 로맨스! 무섭도록 아찔하고 오싹하게 즐거운 판타지가 지금 시작된다!
사실 내용만 보더라도, 딱 느낌이 오는 전형적인 고전공포 판타지다. 마녀와 뱀파이어, 얼마나 무서운 존재들인가.. 그런데 이들의 공포는 그리 대단한 호러가 아니다. 재밌고 웃기고 괴짜스럽고 컬트적인 맛을 풍기는 이미 익숙한 레파토리다. 그래서 색다른 건 없다. '팀 버튼'이기에 그의 색채감과 장기는 스크린 속에서 익숙하게 창조될 뿐이다. 스산한 기운이 도는 18세기의 대저택.. 어둡고 고딕미가 물씬 풍기는 가운데 몽환적인 분위기 속에서 콜린스 가를 무대로 시공간을 넘나든 판타지가 드라마처럼 펼쳐진다. 나름 뼈대있는 가문의 청년 바나바스가 마녀 같은 여자(아니 실제 마녀다) '안젤리크'를 잘못 건드려 사랑했던 연인을 잃고, 패가망신해 자신마저도 뱀파이어로 변신해 200년간 생매장된다.
그리고 깨어난 1970년대.. 200년이라는 세월이 훌쩍 지난 그에게 있어 모든 게 낯설지만 그게 중요한 건 아니다. 당장 풍비박산 난 집안을 일으켜 세우며 '아담스 패밀리'처럼 살고 있는 후손들과 결탁, 마녀 안젤리크가 접수한 그 동네를 다시 찾으려 든다. 하지만 그럴수록 안젤리크의 집착과 유혹은 계속돼 바나바스를 흔든다. 오랜만에 운우지정을 나눈 정사신은 '팀 버튼'식의 미장센이다. 힘센 마녀와 뱀파이어가 사랑을 하면 저렇게 될래나..ㅎ 하지만 바나바스가 사랑하는 여자는 마녀가 아닌 현재 콜린스가에 가정교사로 들어온 묘령의 '윈터스'다. 과거 자신의 연인으로 환생한 그녀를 통해서 사랑의 감정을 다시 품게 되고, 이를 눈치 챈 안젤리크의 어그러진 욕망과 집착으로 인해 위기로 치닫으며 막판에 콜린스가를 쑥대밭으로 만든다. 과연 바나바스는 이 난관을 어떻게 극복하며 집안을 지킬지 또 사랑을 찾을지.. 대충 그림이 그려진다.
이렇게 영화는 '마녀와 뱀파이어'라는 판타지한 소재로 공포와 스릴 그리고 코믹까지 다채적으로 그려낸 일종의 오락무비다. 그런데 흔한 오락으로써 접근이 아닌, 색깔이 뚜렷한 '팀 버튼'이기에 그만이 보여줄 수 있는 장기와 색감은 그대로 살리며 영화 속으로 빠져들게 만든다. 그럼에도 이제는 좀 식상하다고 해야할까.. 믿었던 그만의 견지들, 독특하고 색다른 발현체가 아닌 '과거에도 그랬다'가 그대로 묻어나며 전혀 새로운 기운을 불러 일으키지 않는다. 중간엔 또 루즈하기까지 해 졸린 기분을 만들었는데.. 그러다가 그들의 괴상망칙한 난리부르스 정사신에서 잠이 확 깼다는.. ㅎ
어쨌든 너무나 익숙한 '조니 뎁'은 뱀파이어로 색다르게 분전하며 '캐리비언의 해적' 못지 않은 비주얼을 선사했고, 청초한 매력의 '에바 그린'은 섹시하면서도 색다른 마녀의 색깔을 보여주며 '죽어야 사는 여자'처럼 눈길을 끌었다. (정말 예쁘더라는) 찍는내내 열애설까지 나돌 정도로 두 배우의 조합은 매우 합격점이다. 그외 '아담스 패밀리'처럼 나온 안주인 역할에 '미셀 파이퍼', 정신과 박사로 나온 팀 버튼의 그녀 '헬레나 본헴 카더', 그리고 삼촌팬들에게 격한 사랑을 받고 있는 힛걸 '클레이 모레츠'의 성숙한 모습은 색다른 볼거리다. 바람둥이 뱀파이어 앞에서도 주눅들지 않게 당당하게 자신의 신념과 코치를 하는 거 보면, 역시 모레츠 양은 이런 역에 딱이지 싶다. 막판에는 대변신을 하는 걸 보고서 순간 깜놀.. 마치 '렛미인'의 오마주가 아니였을까.. ㅎ
팀 버튼과 조니 뎁 조합의 판타지 '다크 섀도우', 건재하지만 익숙하고 아쉽다.
아무튼 영화 전체적으로 봤을 때는 그리 색다른 기운이 감지되는 그런 판타지는 아니다. 다만 언급했다시피, '팀 버튼'만의 장기와 색감은 이젠 색다른 발현체가 아닌 오래된 된장 맛처럼 익숙한 그런 기시감으로 다가온다. 더군다나 이야기도 캐릭터간 촘촘하게 연결되지 못한 개연성에 보여주기식 느낌이 짙다. 1960년대 인기 있었다는 TV 드라마 시리즈를 100분 안에 담아내는 게 어디 쉽게냐만은.. 그래도 아쉬운 건 어쩔 수 없다. 건재하다 해서 상쇄될 계제는 결코 아니다.
결국에 '마녀와 뱀파이어' 소재에 깔린 마법과 저주를 '팀 버튼' 식으로 그리며, 그 속에서 엉뚱발랄한 재기와 위트를 간혹 보이긴 했어도, 70년대 팝아트적 분위기를 내뿜었어도, 임팩트하게 다가오질 않는다. 다소 식상하고 이것저것 뒤섞인 이야기는 어느 장르에도 제대로 녹아들지 못했다. 그래도 '팀 버튼'과 '조니 뎁'의 8번째 조합만으로, 섹시한 레드 마녀로 분한 '에바 그린'의 앙상블은 매력적이다. 개인적으로 더 뽑자면 '클레이 모레츠' 양의 변신 또한 볼만했지만, 극에 휘발됐을 뿐이다.
어쨌든 '조니 뎁'의 건재함을 다시 한 번 확인한 영화이긴 했지만.. 그만의 인장은 이젠 아쉽게도 다 찍은 게 아닌가 싶다. 그럼에도 '팀 버튼'의 영화는 묘하게 끌리기 마련이다. 물론 그의 페르소나 '조니 뎁'이 다시 합세하면 어쩔 수 없는 그들만의 영화는 또 나올 것이다. 그게 근원적 매력 아니겠는가.. ㅎ
예고편 : http://movie.naver.com/movie/bi/mi/mediaView.nhn?code=86899&mid=174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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