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니 쪼여 들어간다. 아주 제대로 꾼이 아닐 수 없다. 복수(復讐)로 밥먹고 사는 그런 세계가 있다면 그는 복수계의 타짜다. 암, 타짜가 분명하다. 단박에 요절내는 게 아니라, 전형적인 포커페이스로 서서히 패를 보이고 상대방을 농락하며 판을 뒤엎는다. 그러면서 그들의 목숨까지 위협한다. 단지 영화 '타짜'만의 얘기는 아닐지다. 수목극의 강자로 떠오른 '적도의 남자' 주인공 '엄태웅'.. 그가 바로 애증이 서린 복수를 펼쳐보이며 매회 눈길을 끌고 있는 것이다. 실명의 위기에서 나락으로 떨어져 기사회생 하기까지 과거지사를 알고 있었지만, 친구 이장일의 목을 조르듯 서서히 압박해 들어간다. 그와 한배를 탄 진노식 회장까지 사업적으로 타격을 입으며 전방위적으로 활약한다.
이것이 영화로 그려지면 두 시간에 임팩트하게 보여주겠지만, 드라마기에 긴 호흡으로 기승전결에 의해 서서히 압박 수순을 밟는다. 그래서 '적남'이 그려내는 복수극의 재미가 참 쏠쏠하다 못해 매회 몰입감이 좋다. 이른바 '멘붕'의 아이콘으로 떠오른 이장일 역에 이준혁이 불쌍할 정도로, 그의 허여멀건한 얼굴은 매회마다 사색이 돼 선우의 손아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진즉에 용서를 구하라고 종용했을 때 할 것이지 버팅기기는.. 이미 강은 건너갔으니, 선우가 패를 가지고 완전 노는 분위기다. 이른바 '선우의 조련질'이라 해야 할 정도로, 복수도 타짜처럼 찰지게 펼친다. 그것이 바로 어제(10일) 16회에서 보여준 복수의 패다. 무서운 넘 같으니라고.. ㅎ
그전에 경필의 살인사건 참고인 조사 때 입을 맞춘 두 부자, 장일과 용대는 위기를 넘기며 한시름 놓는다. 그러면서 장일은 자신을 이렇게 궁지로 몬 친구에게 마음속으로 굳게 다짐한다. "김선우 미친놈처럼 굴면 가만두지 않겠다" (가만두지 않는 건 선우일텐데)그런데 이런 위험스런 부자지간 말고, 또 하나의 부녀지간이 있으니 '광춘과 수미'다. 이미 선우에게 모든 걸 실토하며 잘못을 빈 광춘은 참고인 조사 때 모든 전모를 밝히겠다고 했다. 그런데 이런 사실에 놀란 딸내미 수미가 가로막는다. "아빠 안돼.. 내가 장일이를 포기할테니.. 제발 그러지마" (난 위증했단 말이야).. 아비 입장에선 미칠 노릇이다. 딸년 하나가 장일 때문에 생고생하는 거 보면.. 또 딸의 인생을 위해서 공소시효 만료 하루를 남겨두고 수미와 함께 어디로 잠시 잠적한다. (선우 앞에서 석고대죄를 잊어남?)
한편 선우는 진회장에게 자원 개발 투자에 대한 허위공시 직격탄을 날리며 주가 하락 등 사업적으로 타격을 입힌다. 소중한 것을 빼앗는다고 하더니, 이건 일차원적인 게다. 그런 가운데 광춘과 수미가 사라진 갤러리에 모인 사람들.. 그곳에서 수미가 그린 그 그림들을 발견하고 놀라면서도, 이걸 가지고 전시회(제목 '어느 눈부신 날에')를 하자고 제의해 선우는 또다시 압박에 들어간다. 대대적으로 공개해 목을 조르겠다는 거. 특히 헤빙씨 한지원마저도 그 사진들을 통해서 과거 진회장 때문에 자신의 집안이 풍비박산 난 걸 떠올린다. 과거 차 유리창을 깬 자신의 똘기를 자랑스러워하면서.. 그런데 장일과는 극한으로 가지 말기를 부탁한다. 이에 선우는 그냥 내가 알아서 하겠다며 선을 긋는다. 복수도 타짜처럼 쪼여야 맛이지라.. ㅎ
자, 이날 16회 하이라이트 첫 번째 장면이다. 경필 살해사건 공소시효가 만료돼 물 건너 간 상태에서 진회장은 무혐으로 풀리고, 이런 사실을 알리러 온 장일을 맞이한 선우.. 짐짓에 알고 있었다는 둥, 내심 자신도 그러길 바라고 있었다며 별로 신경 안 쓴다고 말하는 선우.. 결국 그 얘기로 다시 돌아간다. 저번에 이어서 독대를 통해서 다시 쪼는 거. 이들의 대화를 한 번 보자.
선우 : 헤칠 이유가 없는데 왜 죽인 걸까?
장일 : 그만해.
선우 : 그런데 너 그땐 왜 그랬니? 사고 순간에 기억이 안 난다고 진정서를 썼지만 난 모든 걸 기억하고 있다. 니가 내 뒷통수를 친 것을.. 난 불이 나간 것처럼 눈앞이 깜깜했지. 난 차디찬 바다로 빠졌고..
장일 : 이런 걸 피해망상이라고 해야되나.
선우 : 너가 이용배씨의 아들인지 말할 수도 있어. 단지 니 입으로 듣고 싶어서였어.
장일 : 나한테 무슨 애기를 듣고 싶은 건데..
선우 : 인정하고 싶지 않겠지만.. 용서.. 난 이렇게 살아 돌아왔고 나름 크게 성공도 했어. 나한테 사과해라. 그날부터 어떻게 살아왔는지 말해봐.
장일 : 너 지금 나 취조하냐?
선우 : 난 아직도 악몽에 시달려.. 난 앞이 지금도 가끔식 안 보여.
장일 : 정신이 오락가락한단 소리네.
선우 : 정말 난 죽일려고 했던거지.
장일 : 피곤하네. 집에가서 자야겠다.
선우 : 니가 계속 모른 채 하면 어쩌나.. 널 두고 용서와 복수의 두 마음이 오락가락했어. 그런데 깔끔하게 정리해 줬어. 그래.. 어렸을 때 나 기억하지. 나 무식하고 무모했다.
장일 : 취했다. 자라.
선우 : (장일이 자리를 뜨자) 신준호 검사님이시죠..
결국 검사는 검사가 잡아들인다 전략인가.. 이렇게 지원의 종용도 있고 해서 다시 한 번 기회를 주었지만 장일은 선우에게 용서를 빌지 않았다. 그러니 선우는 그의 복안대로 수순을 밟는다. 이러니 옆에서 지켜보는 지원은 좌불안석.. (이건 웬지, 민폐의 짜증모드) 장일에게도 찾아가서 지금이라도 용서를 구하고 서로가 맺힌 걸 풀라고 하면서 제발 극한으로 가지 말라고 부탁한다. 하지만 장일이는 선우 그 자식 혼자서 피해자인 척 엄살부리지 말라면서 맞불을 놓는다. 서로가 대척점에서 지기 싫다 이거지.. 사내들의 자존심이란.. ㅎ
결국 선우는 제대로 한방 날리기로 마음 먹는다. 멘붕의 아이콘 이장일에게 또다시 임팩트한 멘붕을 안기며 그를 패닉상태로 몰고 갔다. 16회 최고의 장면으로.. 선우의 전화찬스 신공 아니, 자신이 끌어들인 법률자문 TV프로그램에 출연한 장일에게 직접 전화해 법률 자문을 구하는데.. 바로 자신의 사건을 케이스로 들며 목을 조른 것이다.
선우 : 예전에 둔기로 뒷통수를 맞아서 죽을 뻔한 적이 있었습니다. 저를 제대로 죽일려고 했거든요. 제가 우여곡절 끝에 살긴 했는데.. 이런 경우 살인미수인가요. 아니면 상해죄인가요.
장일 : 정말 큰일날 뻔 하셨군요. 가해자의 고의성이 중요한데요. 제 생각에 그 행위는 살인미수에 해당된다고 봅니다. 25년의 공소시효가 있는데.. 올해가 딱 15년째군요.
선우 : 저를 그렇게 만든 그 친구가 법조인이 됐다면 어떻게 되는 건가요?
장일 : 법은 만인 앞에 공평한거죠.
선우 : 그 친구 여기서 말하면 수사해줄 수 있나요? (그 친구는 이장일 바로 당신입니다.)
장일 : 공개수사도 아닌데, 이런 건 적절하지 않습니다.
선우 : 그래요. 꼭 검사님이 수사해 주시죠. 그 친구 이름은.... 그 친구 이름은..... 이장..... 뚝뚝..
사회자 : 네. 연결상태가 고르지 못했습니다.
이장일.. 속으로 (아놔...... 저 새끼가...) ㅋㅋㅋㅋㅋ 선우의 장일이 조련질은 계속된다. ㄷㄷ
결국 다시 선우 집에서 독대한 두 사람은 서로를 한동안 말없이 응시한다.
적도남 '엄태웅'의 복수는 '타짜'처럼 쪼는 맛.. 이들의 파국은 어떻게 될 것인가?
장일 : 앞으로의 계획을 잘 알려주면 고맙겠는데..
선우 : 아버지한테 가서 그래.. 진회장과 우리 아버지랑 만난 걸 봤다고 말하라고..
장일 : 공소시효는 이미 지났어.
선우 : 증거인멸 교사일때는 예외일 수 있지 않나. 너가 일부러 시간도 끌었잖아.
너희 아버지는 두 사람이 다투는 소리를 듣고 퇴근한 거야. 모든 걸 진회장한테 뒤집어 씌우자니까..
장일 : 내가 못하겠다면..
선우 : 난 낼 신준호 검사를 만날꺼야. 널 살인미수로 조사하라고.. 그리고 평생 살인자의 아들로 낙인찍혀 살아야겠지. 출세는 물 건너 간 거고..
장일 : 증거나 증인도 없는데..
선우 : 공소시효가 지났어도 진회장의 비자금과 주가조작은 계속 수사할꺼고 살인죄를 밝히고도 처벌을 못하게 됐다. 이거 얼마나 극적이야.. 국민들의 공분을 이끌어내서 돌을 맞게 해야지. 너의 아버지 말고 진회장 말이야..
장일 : (자리를 일어나자)
선우 : 내 제안이 안 땡기나 보다. 할수없지 그럼..
장일 : 너희 아버지는 진회장이 죽였다. 김경필씨는 진회장이 죽였어. 둘이 같이 있는 걸 우리 아버지가 봤다.
선우 : 어.. 장일아.. 내일 방송 잘 볼께..
둘의 묘한 썩소를 날리며 16회는 이렇게 마무리했다. 이것은 선우가 장일을 끌어들여 진회장에게 가하는 복수극으로 치닫으며 제안과 거래를 하는 중요한 씬.. 그러면서 중요한 건 선우가 '타짜'처럼 완전 패를 가지고 주무르는 분위기다. 이장일 입장에서는 어떻게든 아버지를 살려야 하는 입장에서 선우의 이런 떡밥을 제대로 문 셈이다. 결국엔 기존에 한배를 탄 진회장과 용배와 장일, 이들을 이간질 시키는 선우의 무서운 괴략이 아닐까 싶다. 즉 공소시효는 지났지만 살인죄로 몰아서 공분을 사게 만들고, 그 과정에서 궁지에 몰린 진회장이 무리수를 두면서 용배한테 위해를(자살위력설) 가하고, 여기에 분노한 이장일이 진회장을 쏴 죽이려 하는 등, 한마디로 세 사람을 자중지란에 빠지게 만든다?!
이것이 앞으로 '적남'이 그려질 파국적 그림이 아닐까 싶은데.. 어쨌든 선우의 머리 속에는 애증의 복수 그림이 어떻게 자리하고 있는지 뇌구조를 뜯어보고 싶을 정도로 '타짜'처럼 찰지고 치밀해 보인다. 과연 그런 복수의 끝은 어떻게 될지 남은 4회를 계속 기대해 본다. 무언가 또 다른 반전과 파격이 있을 거라 예상된다. 과연 그건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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