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실을 담아내듯 상상의 나래를 펼치는 영화 속 이야기 중에 '재난'의 종류는 다양하다. 물불을 안가리고 화끈하게 시원하게 물바다를 만들거나 불바다를 만들거나 아니면 아예 얼려버리거나, 혹은 '2012'처럼 지구가 대멸망하거나.. 재난의 양태는 그렇게 스크린을 수놓으며 현세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경종을 울린다. 설사 실제로 저런 일이 있겠나며 코웃음치지만.. 작금의 병들어가는 지구를 볼라치면 불가능한 것도 아니다. 통제가 불가항력적인 저런 스펙타클한 자연재해도 문제지만, 바이러스 감염과 전염으로 속수무책 사람들이 죽어나간다면 이 또한 심각해진다. 실제로 우리는 그런 일을 겪었다. 조류독감에 신종플루 등, 사람들 주위를 맴도는 감염인자는 차고 넘칠 정도로 많다. 뭐, 그래서 판타지하게 살아있는 시체 '좀비'가 탄생한 게 아니겠는가..
어쨌든 각설하고, 이런 감염 바이러스 재난을 극대화한 한국영화 한 편이 나와서 주목을 끌고 있다. 흔한 자연재해가 아닌, 한낱 별거 아닌 것처럼 보이는 기생충 재난이다. 기생충? 소싯적 우리가 못살던 시절엔 기생충이야, 구충제 한 알 정도 먹으면 나았다. 그런데 이걸 영화로 만들 정도라니, 대단한 발상이자 용자 나시게 참신함마저 든다. 그 기생충 이름은 '연가시'란다. '센가시'도 아니고 상상으로 만든 이름 같지만, 버젓히 생물학적 학명(Gordius aquaticus)까지 갖춘 실제 존재하는 기생충이다. 메뚜기나 사마귀같은 곤충을 종숙주로 하는 기생충으로, 짝짓기를 물에서 하며 숙주의 뇌를 조종, 물로 뛰어들게 만드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 나름 무서운 넘이다. 그런데 이게 변종변이돼 사람 몸 속에 들어가 숙주삼아 번식하고 산란기가 되면 인간의 뇌를 조종해 물가로 인도해 자살케 만든다는 것. 뼈와 살가죽만 남기고 흉축한 몰골을 한 채.. 그것이 영화 속 감염 재난의 착안점이고, 저 메인 포스터처럼 전국 각지의 물가에서 사람들 시체가 떠오르게 됐으니, 영화 '연가시'의 시놉시스는 이러하다.
치사율 100% 변종 연가시 감염주의보!
그 누구도 피할 수 없는 감염의 공포가 대한민국을 초토화시킨다!
고요한 새벽녘 한강에 뼈와 살가죽만 남은 참혹한 몰골의 시체들이 떠오른다. 이를 비롯해 전국 방방곡곡의 하천에서 변사체들이 발견되기 시작하는데… 원인은 숙주인 인간의 뇌를 조종하여 물 속에 뛰어들도록 유도해 익사시키는 ‘변종 연가시’. 짧은 잠복기간과 치사율 100%, 4대강을 타고 급속하게 번져나가는 ‘연가시 재난’은 대한민국을 초토화시킨다. 사망자들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게 되자 정부는 비상대책본부를 가동해 감염자 전원을 격리 수용하는 국가적인 대응태세에 돌입하지만, 이성을 잃은 감염자들은 통제를 뚫고 물가로 뛰쳐나가려고 발악한다. 한편, 일에 치여 가족들을 챙기지 못했던 제약회사 영업사원 재혁(김명민)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연가시에 감염 되어버린 아내와 아이들을 살리기 위해 치료제를 찾아 고군분투한다. 그 가운데 그는 재난사태와 관련된 심상치 않은 단서를 발견하고 사건 해결에 나서게 되는데…
위의 시놉시스를 보더라도, 사실 별거없는 재난 속 이야기를 구현하고 있다. 그런데 그 연가시 재난이 일어나기 전, 한때 잘나가던 제약회사 연구원 박사가 주식으로 쪽박차자 영업사원으로 전락한 재혁의 일상이 그려진다. 고단하고 힘들고 가족 챙기기도 귀찮을 정도로 그는 삶이 고달펐다. 밤늦게 파김치가 돼서 집에 들어오면 마누라와 애들은 식탐에 빠져서 얼마나 먹어 제끼는지, 꼴도 보기 싫었다. 하지만 그 식욕은 변종 연가시 감염 증상의 초기 단계였다는 점에서 감염 공포는 이미 시작됐다. 식욕이 왕성해지지만 체중은 늘지 않고, 갑자기 식욕이 없어지다가 극심한 구갈 증세로 물만 드립다 처먹는 증상에 빠지며 사람들은 물가를 찾아 들어가 죽게 된다. 이것이 변종 연가시로 인한 감염 재난 공포의 전방위적 압박 수순이다. 마치 좀비들처럼 물가로 뛰어드는데 참 인상적이더라는.. ;;
사실 처음에 별거 아닌 자살로 봤으나, 전국 각지의 주요 하천과 물가에서 그런 시체들이 떠오르며 무섭게 이슈화 되자, 급기야 비상대책위원회가 꾸려지고 국가는 감염재난을 선포한다. 감염자들을 격리 수용하면서 재혁의 아내와 아이들까지 그곳에 갇히게 된다. 결국 국가와 사람들까지 변종 연가시를 죽일 수 있는 특효약을 구할려고 백방으로 노력한다. 그러면서 재혁이 몸담고 있는 제약회사 '조아제약'의 '윈다졸' 구충제가 치료제로 떠오르며 또다른 아비규환이 벌어진다. 그 약이 특효약임을 안 사람들이 서로가 살고자 먹고자 사투를 벌이는 가운데.. 주인공 재혁의 고군분투는 계속된다. 결국 아내와 아이들을 살려야 하는 절체절명의 위기 속에서 이번 감염 재난사태의 발단과 단서가 되는 사건이 떠오르며 영화는 사회극로 치닫는다. 이것도 결국 시사적인 음모론인가?
그렇다면 여기서 이 영화의 주안점과 사견을 4가지로 간단히 간추려 본다.
1. 사실 이 영화는 가족애를 내세운 가족영화일 수도 있다. 위처럼 또다른 메인 포스터를 보듯이 주인공 재혁 역에 김명민은 정말 처절함의 끝을 보여주었다. 역시 명민본좌의 이런 연기는 甲이다. 수년전 영화 <내사랑 내켵에>에서도 살을 완전 쏙 빼며 불치병을 앓은 환자로 온몸을 불사르더니, 여기선 변종 연가시에 감염된 아내와 아이들의 목숨을 살리고자, 그 특효약 '윈다졸'을 구할려고 사방팔방 뛰어다니는데 전작 <페이스 메이커> 저리가라다. 좀비처럼 변한 사람들에 깔리는 건 예사요, 불속에서 타 죽을 뻔 하다가, 이하늬 연구원이 구해줘서 살아나는 등, 이것이 리얼한 고군분투임을 제대로 보여주었다. 뭐, 가족의 목숨이 달린 문제기에 가장이라면 당연히 이 정도는 하지 않을까 싶다. 물론 아내 역에 문정희 배우도 아이들과 그 수용소 안에서 제대로 사투를 벌였다. 심지어 사람들 속에 갇히기도 하면서.. 그냥 흔한 아줌씨로 봤는데 이 분도 나름 연기파다. 그 생수통을 드립다 마시면서 이러다 죽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는 인터뷰가 갑자기 떠오른다. ㅎ
2. 영화 속 재난은 '감염'이다. 대신에 이 감염은 전염이 안된다. 맞나?! 그렇다면 이걸 다행이라 볼 수 있을까.. 감염자와 접촉했다 해서 좀비처럼 변하는 것도 아닌, 변종 연가시에 감염된 그런 감염자들 자체를 다룬다. 여름철 물가에서 놀다온 사람들만이 걸리게 된 연가시병, 영화는 그런 감염 재난 공포를 예측 가능한 수순으로 밟는다. 사람들이 죽어나가는 현장을 나름 생생하게 담아내고, 산 자들에 중에 격리시켜 가족까지도 떨어지게 만들고, 나중에 휴대폰까지 뺏는 무리수를 둔다. 바로 격리만이 우선 안전하다고 믿는 사회적 합의가 뒤따른다. 밖에선 강구책을 모색하며 살리기 위한 특효약을 구하기에 혈안이 된다. 그 과정에서 제약회사 '조아제약'이 수면 위로 부상하며, 그 지점부터 이건 사회극로 치닫는다.
3. 조아제약이 개발했다는 구충제 바로 특효약 '윈다졸'은 영화 중반 이후 계속 거론이 된다. 이름도 생소하고 막지어낸 듯 싼티나 보이는 이 약의 탄생 뒤에는 거대한 음모가 도사리고 있었다는 점이다. 이건 영화적 스포일러가 될 수 있어서 자세히 언급하기 힘들어도, 신약개발에 뒤처진 조아제약이 극비리에 약을 개발하면서 그것을 감추듯 알듯 뿌리며 저울질한 것. 결국 소유주의 탐욕으로 인해 사람들을 죽이면서까지 거래를 위해서, 이 모든 건 역시 '돈'과 관련됐다는 저속하고 자본만능주의 한탕에 빠진 리얼한 사회극으로써 그려진다. 그래서 말미엔 정말 뭥미?가 나올 수도 있다는 점이다. 변종 연가시 감염 공포의 재난이 초반부터 생생하게 몰입감 좋게 볼만하더니만.. 나중엔 요상하게 장르가 바뀌는 걸 목도하게 된다. 가족과 사회만이 남는다?
4. 마지막으로 영화 속 계속 언급된 '조아제약'의 '윈다졸'은 실제 존재하는 약이다. 정말 구충제로 시중에서 팔리고 있는 약이라는 점. (이번 여름에 물가로 놀러 간다면 이 약은 꼭 사서 먹어야겠다는 생각이 들더라는..) 본 영화 속 PPL을 위해서 아니, 이건 직접광고식 브랜드 플레이스먼트(BPL)로 표출되었다. 조아제약이 촬영지원 등으로 투자한 건 5천만원 선이라는데.. 영화가 흥행가도를 달리고 있는 입장에서 나름 대박이 아닐 수 없다. 회사 이름과 약도 제대로 알렸으니 말이다. 물론 영화 '연가시'도 의외로 저예산급의 제작비 30억 선에서 이렇게 잘 뽑아내고 있으니.. 역시 성공한 셈이다. 김명민은 '조선 명탐정' 이후 전고점을 찍을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일선에선 봉준호 감독의 <괴물>을 연상케하는 그림이지만 속내는 닮은 듯 많이 다른 양상을 띄고 있는 '연가시'다. 거기선 괴물에 잡혀서 갇힌 소녀를 구할려는 가족의 사투가 벌어지듯, 여기서도 가족을 구할려는 김명민의 사투가 그려지지만 감염과 괴수의 공포가 같을 순 없다. 또 외화론 <컨테이젼>의 그런 바이러스 공포와 비슷해 보이지만, 현실감은 컨테이젼이 영화적 색채감은 '연가시'가 어울려 보인다. 물론 한국식의 감염 재난 현상을 나름 리얼하게 담아냈다는 점에서 '연가시'는 색다른 소재와 함께 예측 가능하게 사회적으로 낯선 영화가 아니다. 뭐, 보면 알 터. 개인적으로 재밌게 잘 봤다.
어쨌든 올 여름철 물가로 휴가를 떠날 땐 '윈다졸' 한 정 쯤 챙겨들 가시길.. ㅎ
예고편 : http://movie.naver.com/movie/bi/mi/mediaView.nhn?code=88225&mid=180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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