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치 한 편의 영화 포스터처럼 나온 이 스틸컷에서 사극드라마 '무신'은 무언의 아우라를 뿜고 있다. "한 남자의 손에서 시작된 살아있는 천년의 역사"라는 그 문구처럼 묵직한 울림으로 비장한 분위기까지 자아내며, 사진 속 김주혁은 마음 속으로 강하게 읖조린다. "신이시여, 저를 버리시나이까.. 이 야만의 시대를 끝내게 저에게 힘을 주시옵소서.." 그는 그렇게 굳은 결의로 다짐한다. 그렇다. 지금 주말 드라마 '무신'이 그려내는 기본 플롯, 고려 무신정권의 종결을 가져온 '김준'의 일대기가 그것이다. 그렇다고 완벽한 정통 보다는 이야기 전개상 퓨전이 들어가지만, 그래도 무신정권의 팩트를 가지고 그 속에서 정통의 맛을 살리며 나아가고 있어 '무신'은 남성적 사극으로써 인기를 한 몸에 받고 있다. 여성적 취향의 판타지 사극로맨스 '해품달'의 그 인기와는 다르지만서도.. ㅎ
아무튼 무신은 개인적으로 꽤 기대를 하고 있고, 주말 밤 특별한 일이 없는 한, 닥본하며 즐겨보고 있다. 이제 겨우 4회.. 총 50부작 중에서 시작된 극 초반이다. '인생무상' 같은 '무상' 승려에서 승군들 반란사건 여파로 노예로 전락, 강제 노역하며 생을 마감할 그에게 있어 절호의 기회가 찾아온다. 바로 거친 남자들의 스포츠 '마상격구' 대회를 통해서 출세길 아니, 출세 보다는 노예에서 벗어나 군관으로 나아갈 기회가 제공된다. 물론 그에게는 살아서 월아를 다시 만나고, 그 굴레에서 빼내야 하는 게 더 중요한 일이긴 했지만서도.. 어쨌든 김준은 노예의 굴레를 벗을 각오를 하고 살생까지 하게 되는 '신의 한 수'를 두는데.. 그것이 바로 어제(19일) 4회의 주요 내용이다.
그러면서 최양백 지시하에 격구의 워밍업을 익힌 김준의 고뇌가 그려졌다. 그래, 난 이제 스님이 아니라 노예일 뿐 반드시 살아남아야 한다. 그리고 이날 하이라이트 부분, 생사가 왔다갔다하는 격구장을 마치 미드 '스파르타쿠스'에 갇힌 노예들처럼 그들을 철창 안에 갇어놓고, 수문을 열듯 카메라웍으로 그들의 거친 야성을 포착해 그런 그림을 연상케 했다. 그러면서 군중들의 미친 환호 속에서 먼저 한 팀이 가열한 격전을 버리고, 그 속에서 김준 또한 생존 본능이 발동해 달려나갈려고 포효한다. 기대하시라.. 그래, 죽기 아니면 까무러치기다. 4회는 그렇게 매조지되며 김준의 격구 실력은 다음 기회로.. ㅎ
그렇다면 '김준' 그는 과연 누구였을까? 이런 드라마적인 내용 말고, 이제부터 드라마 외적으로 역사적인 내용을 가지고 설을 풀어볼려고 한다. 강호네 집에 굴러 다니는 역사책을 뒤져서 간단히 정리해 이야기적으로 끄적이는 것이니.. 그냥 재미(?)로 봐주시면 되겠다. ~
먼저, '무신' 홈페이지에 나온 캐릭터 설명을 보듯이, 그는 역사의 기록처럼 최충헌가의 노비 김윤성의 아들이었다. 외견상 몸집이 크고 활을 잘 쏘았던 김준은 최우의 충복이 되고 가신으로 발전, 최측근으로 활동하며 권신으로써 결국 무신정권의 끝을 주도하게 된다. 이것이 김준의 간단한 프로필이다. 그전에 고려시대 무신정권은 알다시피 1170년부터 1270년까지 백 년 간 진행되어온 말 그대로 군사쿠테타.. 허수왕비 왕은 뒷방으로 물러나게 하고 지들끼리 권력욕에 사로잡혀 나라를 좌지우지했던 한마디로 그들만의 리그였다. 학창시절 국사 시간에 배웠듯이, 또 과거 KBS에서 나온 '무인시대' 사극을 나름 봤다면 이 이야기는 낯설지 않다. 조선 임금을 외우듯, '태정태세문단세..'처럼 그때 무신정권 라인업은 이랬다.
이고-이의방-정중부-경대승-이의민-최충헌-최우(최이)-최항-최의-김준-임연 순..
그때 '무인시대' 사극에서는 이고 역에 박준규, 이의방에는 서인석, 정중부는 故 김흥기, 경대승은 박용우, 이의민은 이덕화, 최충헌은 깁갑수가 맡으며 각자 배역에서 아우라를 뿜었었다. 쌍칼 이고도 기억나고, 서인석의 이의방과 이덕화 이의민의 포스도 좋았고, 정중부 역에 故 김흥기 씨도 좋았고, 박용우의 재발견인 경대승의 우국충정도 볼만, 그리고 한때 연기본좌로 불렸던 갑수횽아의 최충헌 역 또한 기억에 생생히 남는다. 마지막 환청과 환각에 시달려 죽어가는 그 마지막 씬은 나름 대단했었다. 아무튼 이런 가열했던 '무인시대' 이야기에서 이어진 것이 '무신', 바로 '무인시대 시즌2'라 볼 수 있다.
본 '무신' 속 최충헌은 이미 상왕 같은 존재로 물러나 절대권력의 끝을 보듯 앉아서 지시만 내리고 있고, 그의 두 아들 최우와 최향이 그 중심에서 더 나아가 정권을 탈취하고자 암중모색중이다. 그래서 이런 무신정권의 과정을 보면, 보통 이의방, 정중부, 경대승, 이의민으로 이어지던 제1기 형성기와 최충헌, 최우, 최항, 최의로 세습된 제2기 심화기를 지나서, 최씨 무신 정권의 종결을 가져온 제3기 해체기로 나눌 수 있다. 그 마지막 제3기 무신정권을 주도한 인물이 유경과 김인준, 바로 '김준'이었다. 처음에는 벼슬이 높은 유경이 권력을 쥐는 듯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난을 실질적으로 이끈 김준이 최고 권력자가 되었다. 물론 그 과정이 순탄치는 않았다.
최충헌 사후 '최우-최항-최의', 최씨 무신정권은 그 끝을 향해 달렸다.
그 과정을 순차적으로 간단히 정리해 보면 이렇다. 그전에 역사가 그러하듯, 아비의 권력을 이어받는 형제들의 난은 좋게 넘어가는 법이 없다. 조선시대 건국 이후, 태종 이방원의 정권 탈취 과정만 봐도 그렇고.. 아무튼 여기 최충헌의 두 아들 최우와 최향도 만만치 않았다. '무신'에서는 현재 최향 쪽 라인업이 강성한 것으로 그려지고 있는데, 원래도 최충헌 사후 그 측근들은 최향을 후계자로 세우려고 했다. 최충헌이 위독하다고 거짓으로 알려 최우를 꾀낸 뒤 해치울 계획까지 세웠지만, 계획은 곧 탄로나며 많은 숙청이 이루어지게 된다.
그 과정에서 절대 권력자로 나섰던 최충헌 사후(1219년), 두 아들 최우와 최향의 권력타툼이 이루어지고 최향에게 넘어갈 권력을 형이 바로 간파, 최우가 교정별감에 올라 절대 권력을 이어받는다. 이후 나름의 선정을 베풀면서 반란을 주도했던 최향과 그의 세력을 모두 제압한다. 1225년 최우는 무소불위 권력기구 '정방'을 만들어서 무신과 문신까지 아우르는 강력한 권력의 중심에 섰다. 그의 집권시절 몽고군과 맞서 싸우는 과정이 있었고, 이때 도읍을 강화도로 옮겨 자신의 안위를 도모했다는 비판을 사후에 받는다. 1249년 몽고군의 제4차 침입이 있고 난 다음 최우는 세상을 떠난다. 그에게는 만종과 만전이라는 두 아들이 있었는데, 이들은 최우에 뜻에 따라 승려가 되었다.
하지만 이들은 승려 신분인데도 난봉꾼에 패악질을 일삼는 악독한 넘들이었다. 바로 '무신' 속에서도 그렇게 그리고 있다. 특히 둘째 만전 역에 '백도빈'(백윤식 아들)이 나름 제대로인데.. 그가 바로 '최항'이라는 인물이다. 바로 최우의 서자였지만, 그래도 아비의 사랑은 받았는지 호부상서 등의 벼슬을 하며 힘을 모으다가 최우가 죽자 권력을 넘겨받았다. 당시 고종으로부터 갖가지 관직을 받으며 승승장구, 동북면 병마사와 교정별감을 함께 맡으면서 권력을 좌지우지하게 된다. 그 권력은 백성들 사이에 평판이 좋은 민회, 김경손 등을 귀향 보내며 자신의 정적을 없앴고, 계속되는 몽고군을 피해 강화도에서나마 자신의 권력을 누리고자 했던 최항은 결국 죽음을 앞두고 측근들에게 아들 '최의'에게 권력을 물려주게 되는데..
그런에 이 '최의'라는 인물은 아비 최항이 승려로 있을 때 간통해서 얻은 아들이었다는 거. 특히 최의의 외가는 기생 집안이었기 때문에 누구라도 자신의 외기가 천하다고 말하면 가차 없이 죽이는 등 폭정을 일삼었다. 그렇게 권력을 함부로 휘두른 젊은 최의는 세상 물정을 몰라 측근들을 관리할 줄 몰랐고, 그 때문에 무신들 내부에서 권력을 노리는 무리가 생겨나기 시작했다. 급기야 1258년 4월 유경, 김준, 임연 등이 삼별초의 힘을 빌려 최의를 죽이고, 이로써 60년 동안 지속된 최씨 무신정권은 막을 내리게 된다. 하지만 실질적인 권력은 여전히 왕 보다는 최씨 정권을 몰락시킨 유정, 임연, 김준 등이 쥐고 있어서 이들의 막판 세력 싸움이 또 벌어진다.
무신정권의 진정한 종결자 '김준', 그도 권력자였고 '무신'은 어떻게 그릴까?
우선 최씨 일가의 권력 독점이 끝나면서 어쨌든 형식적으로나마 왕권을 어느 정도 되찾는 시기였다. 하지만 80년 이상 지속된 무신정권의 틀은 쉽게 무너지지 않았다. 실제 권력자로 나타난 유경, 김준 등이 여전히 무신정권을 이어 갔기 때문이다. 특히 김준은 최항의 집권시절, 장군 바로 아래 벼슬인 '별장'으로 승진까지 한 인물이었다. 하지만 최항이 죽고 그의 아들 최의가 권력을 물려받은 이후에는 찬밥 신세로 전락한다. 이에 불만을 품은 김준은 1258년 최의를 죽이고 정권을 왕에게 넘겨주었다. 이 공로로 '장군' 자리에 오르고 공신의 칭호도 받았다. 하지만 일등 공신은 유경의 몫으로 돌아갔다.
그런데도 권력은 김준에게 집중되었고, 최의를 없애는 일을 실질적으로 주도하고 무장 세력을 움직일 수 있는 힘이 그에게 있었기 때문이다. 이 힘을 바탕으로 김준은 유경을 밀어내고 일등 공신이 되었으며 이때부터 이름도 과거 김인준에서 '김준'으로 개명하게 된다. 그리고 동생 김승준도 '김충'으로 이름을 바꾸고 권력자의 자리에 올랐다. 김준은 1264년 교정별감이 되어 군권과 감찰권을 손에 넣고, 1265년에는 문하시중에 오르는 동시에 해양후에 책봉되어 최씨 무신정권의 권력을 뛰어넘는 자리에 오르게 된다. 한마디로 무소불위의 권력을 막판에 누리게 되는데.. 하지만 형식적으로 정사의 결정권은 왕에게 있었기 때문에 그는 곧잘 24대왕 '원종'과 팽팽하게 맞서곤 했다. 특히 몽고의 입김으로 자신의 힘이 사라질 것을 두려워하던 김준은 원종의 친몽 정책에 불만을 품게 된다.
바로 이런 몽고에 대한 입장 차이로 갈등이 생기자, 김준이 먼저 원종을 없애려고 했다. 이 계획이 실패로 돌아가자 원종은 마침내 김준을 없애기로 해 왕과 권신은 그렇게 루비콘 강을 건넜다. 그때 이 일을 해내기 위해 원종이 찾은 인물은 바로 '임연'이었다. 임연은 한때 김준의 양자라고 불릴 만큼 김준을 따랐지만, 김준이 권력을 독차지하고 횡포를 부리자 점점 그를 싫어하게 된다. 임연의 이런 마음을 알아낸 원종은 곧 그에게 김준을 없애라고 명령했고, 임연은 1269년 6월 환관들과 모의해 김준을 궁궐로 끌어들여 곧바로 죽여 버리고 동생 김충도 없애 버렸다. 이로써 고려 무신정권의 권력은 임연에게 넘어갔다. 그런데 그 또한 원종과 마찰을 빚는 등 고민이 너무 지나쳤는지 병으로 죽고 나서, 아들 임유무가 교정별감에 올랐지만 오래가지 못하고 곧바로 죽임을 당했다. 이로써 무신 정권시대는 완전히 막을 내리게 된다.
이렇게 무신정권 시대의 막판은 마치 바통을 잇듯 예견된 파국을 향해 달려가고 있음을 볼 수 있다. 김준이 최의를 죽이고 그 최씨 일가의 무신정권 시대를 종식시켰다지만, 그마저도 권력욕에 쌓여 같이 손을 잡았던 휘하 임연에게 죽임을 당하는 등, 그 모습은 배신과 음모가 판치는 야만의 역사처럼 낯설지 않다. 그래도 '김준'하면 최충헌의 노비 출신으로 최우의 눈에 들어 충복으로 가신으로 활약하며 무신정권의 궁극을 달리고자 했던 인물임에는 이견이 없다. 그렇다고 여기 '무신' 드라마가 위의 역사적 이야기처럼 그대로 그리지는 않을 것이다. 주인공 격인 최우와도 끝까지 가며 동생 최향 세력과의 다툼이 계속 있을 것이며, 개인적인 라이벌 구도인 최양백과의 대립각도 볼만한 그림이다. 이외에도 절간에서 의남매를 맺은 월아와 최우의 고명딸 송이 사이의 삼각관계 러브도 있는 등, 퓨전의 요소도 있다.
아무튼 '무신'의 김준은 역사의 기록대로 최씨 일가의 무신정권 종결자로 활약했던 것처럼 그 중심에 섰던 인물이다. 그런 주인공이 펼치는 이야기이기에 이 사극드라마 팬이라면 이목이 집중되고, 앞으로 진정한 고무남(고려무신남아)으로 활약이 기대되는 대목이다. 이것으로 김준의 간단한 일대기를 줄이며.. 과연 '무신'은 김준의 이런 과정과 마지막을 어떻게 그릴지 계속 주목해 보자. 뭐.. 아직도 갈 길은 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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