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신 & 은밀한 유혹

연산군 11년, 1만 미녀를 바쳐 왕을 쥐락펴락하려는 자가 득실거리니, 그야말로 간신들의 시대가 도래했다.

“단 하루에 천년의 쾌락을 누리실 수 있도록 준비하겠나이다!”
연산군은 임숭재를 채홍사로 임명하여 조선 각지의 미녀를 강제로 징집했고, 그들을 운평이라 칭하였다. 최악의 간신 임숭재는 이를 기회로 삼아 천하를 얻기 위한 계략을 세우고, 양반집 자제와 부녀자, 천민까지 가릴 것 없이 잡아들이니 백성들의 원성이 하늘을 찔렀다.

"왕을 다스릴 힘이 내 손안에 있습니다! 내가 바로 왕 위의 왕이란 말입니다!"
임숭재와 임사홍 부자는 왕을 홀리기 위해 뛰어난 미색을 갖춘 단희를 간택해 직접 수련하기 시작하고, 임숭재 부자에게 권력을 뺏길까 전전긍긍하던 희대의 요부 장녹수는 조선 최고의 명기 설중매를 불러들여 단희를 견제한다. 한 치도 물러설 수 없는 간신들의 치열한 권력다툼이 시작되고, 단희와 설중매는 살아남기 위해 조선 최고의 색(色)이 되기 위한 수련을 하게 되는데…

'간신'은 조선시대 최악의 폭군으로 기록된 연산군의 일대를 다룬 이야기다. 사실 연산군은 기존의 사극 등에서 조명해 오면서 익숙한 레파토리가 있다. 이른바 폭군과 광기로 점철된 연산군의 색깔은 여기서도 차용하는데, 풀어내는 방식과 스타일에 있어선 색다른 기시감을 보여준다. 조선 팔도의 1만 미녀를 궁으로 차출한 '채홍'이라는 사건을 통해 이야기를 확장하고, 희대의 간신 임사홍과 임숭재 부자가 전면에 나서 연산군과 함께 삼각편대를 이루며 캐릭터 열전을 펴나간다. 그외 장녹수를 비롯해 설중매, 유자광과 박원종까지 가세해 종국엔 연산군의 몰락으로 역사적 의미마저 담아내며 완결성을 보인다.

이 영화가 기존의 사극과 차별화된 지점은 그 어떤 스타일이 구축된 미장센에 있다. 폭력과 광기, 그리고 섹스라는 소재를 직접적인 남녀간의 행위묘사를 통해 그리기 보다는 관음증을 대표하듯 채홍된 여자들의 난교와 방중술을 적나라하게 묘사하는 데 치중하며 연산군의 광기를 달군다. 오프닝은 '300'을 연상케 하는 연출 기법으로 주목을 끌며, 본 이야기와 스타일이 심상치 않음을 예고하는데 극 내내 판소리 내레이션으로 극성을 드러내는 등 기존 사극과의 차별화는 분명 눈에 띈다. 그만큼 민규동 감독이 작정하고 사극의 자장 안에서 여러 레시피를 구축해 보여준 장기가 묻어난다. 

하지만 인물의 사연이 이야기에 잘 녹아들지 못하면서 주인공 임숭재와 단희의 멜로라인이 개연없이 부각돼 파국을 향한 전개가 진부해지면서 탄력을 잃는다. (과거 정인이었고 아비의 복수를 위해 왕을 치려는 설정은 무협의 낡은 레파토리) 다소 강도 높은 성애장면과 폭력의 광기를 보이는 탐욕에만 집중하면서, 여자들은 그저 눈요깃거리로 전락해 버리며, 심도 있는 '그녀들의' 이야기를 볼 순 없다. 또한 영화를 대표하는 간신으로 그 중심에 선 임숭재가 오히려 순정남으로 변하면서 희대의 간신이 맞나 싶을 정도로 역할에 있어 배반돼 보인다. 연산군을 제대로 선보인 김강우의 미친 광기는 때론 과잉되게 보이지만 한국판 '게리 올드만'을 간혹 떠올리게 한다.

두 여주인공으로 나선, '인간중독' 때보다 별로였던 임지연의 연기는 여전히 평면적이며, 그나마 눈에 띄는 인물은 바로 설중매 역 '이유영'이다. 본 영화가 19금 사극이 된 건 다 그녀의 공이 아니었을까. 육체와 연기가 혼연일체되는 그야말로 제대로 몸을 사라지 않았으니 나름의 재발견인 셈이다.

한줄 평 : 폭군 연산군을 다시 소환한 사극. 기존의 이미지에 더한 폭력과 섹스, 광기의 삼중주가 스크린을 연실 달군다. 채홍된 미녀들의 방중술과 임부자간의 갈등, 그림에 빠진 연산군의 광기 등, 볼거리와 미장센은 출중하나, 서사는 광기에 비해 미온적이다. 그럼에도 19금 사극의 또 다른 지평을 열었다.

믿었던 친구에게 배신 당하고 사채업자들에게 쫓기며 하루하루 희망을 잃어가던 ‘지연’(임수정). 그런 그녀 앞에 젊고 유능한 비서 ‘성열’(유연석)이 나타나 그녀의 인생을 바꿀 거대한 제안을 한다. 그 제안은 바로 천문학적인 재산을 소유한 마카오 카지노 그룹의 ‘회장’(이경영)을 사로잡아 그의 전 재산을 상속받는 것. 단, 성공 시 그 재산의 절반을 ‘성열’과 나누는 것을 조건으로 내건다. 달콤한 만큼 위험한 제안이지만 매력적인 ‘성열’에게 강한 끌림을 느낀 ‘지연’은 마침내 ‘회장’의 호화 요트에 오른다. 세 사람 사이에 감도는 미묘한 긴장과 의심 속에서 순조롭게 진행 되던 계획은, ‘회장’의 갑작스러운 죽음으로 어긋나게 되는데…

신데렐라를 향한 치밀한 계획!
게임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완벽한 결말을 향한 진짜 거래가 시작된다!

한 남자가 한 여자를 끌어들여 유혹하며 거부의 돈을 노린다. 여자를 거부랑 결혼시켜 상속받을 돈을 반띵하자는 제안. 여자는 갖은 빚에 허덕이는 고달픈 삶에 선뜻 제안을 받아들여 거부에게 접근하고, 그 남자가 시키는대로 움직이는데... 갑자기 그 거부가 죽게 되면서 이들은 위기로 치닫는다. 프랑스 유명 범죄소설 '지푸라기 여자'를 재해석한 영화 '은밀한 유혹'의 스토리다. 내용만 보면 어디선가 많이 본 듯한 범죄 멜로 스릴러의 장르적 재미가 스며있다. 하지만 이야기는 이들의 감춰진 욕망에 대해서 심리적 긴장감을 부여하는 대신 사연을 나열하는 데 초점을 맞추고 문어체 느낌의 대사로 전달하고 설명하는 식이다. 한마디로 팽팽한 긴장감이 없는 밍숭한 스릴러다. 소재 또한 진부한데다 그것을 연출하는 기법이나 미장센 등 작품의 기조가 마치 90년대의 아침형 막장드라마 느낌마저 든다.

좀 어이없는 건, 돌연사한 회장을 산 사람처럼 꾸며서 버젓이 이동하고 감추는 데선 실소를 자아낼 정도다. 유치하기 짝이 없으며 상식적으로 수긍하기 힘들다. 나름 이야기는 빠르게 전개되지만 인과관계는 부족해 범인이 이미 누구인지 유추가 가능한 상태에서 두 남녀의 충돌은 빤하게 진행되고 구색을 맞추는데 그친다. 한마디로 총체적 난국의 범죄멜로 스릴러다. 결국 소재와 전개, 인물들이 기계적으로 세팅되고 움직이는 통에 뭐 하나 색다른 재미를 찾을 수가 없는 망삘의 유혹이 되었다. 대세남 유연석과 '내 아내의 모든 것' 이후 3년 만에 심사숙고해 고른 임수정의 조합이 이렇게 무너질 줄이야. 제목은 무언가 치명적이나 작품은 전혀 그것과 상관없는 영화로 남고 말았다.

한줄 평 : 거부의 재산을 노린 두 남녀. 여자는 남자의 제안대로 움직이며 한탕을 노리는데, 인물은 물론 소재와 전개 등이 기계적으로 움직이면서 긴장감은 고사하고, 색다른 범죄 멜로 스릴러의 기운을 발산하지 못한다. 한마디로 망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