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인 포스터를 보게 되면, '세 남자가 가고 싶었던 서로 다른' 이란 문구와 그림 구도상, 세 남자의 얽히고설킨 관계도를 암시하는 듯한 영화 '신세계'가 전격 개봉했다. 어느 감독의 작품이란 걸 논하기 전에, 당장 최민식과 이정재 그리고 황정민이 만난 이 꿈의(?) 캐스팅 조합은 주목을 끌기에 충분해 보인다. 진한 마초적 냄새를 풍기며, 일견 온리 수컷들을 위한 영화적 느낌으로 포팅된 범죄물이다. 그것도 흔해빠진 조폭영화란 점에서 별반 다를 게 없어 보이지만, 신세계는 기존의 조폭물과는 다른 궤적을 따른다. 조직내 후계자 구도를 둘러싼 암투를 그리는 설정이긴해도, 그 속에 잠입경찰이 있다는 점에서 한국의 '무간도'라 칭할 정도로 다소 스릴러적 요소까지 갖추고 있다. 그렇다고 긴장감이 팍팍 조여오는 건 아니다. 어쩔땐 힘을 뺀 드라마처럼 물 흐릇이 전개된다. 딱, 1년 전 <범죄와의 전쟁 : 나쁜놈들 전성시대>가 조폭의 시대적 향수를 자극하며 나름 흥행에 성공했듯이, 조폭영화에서 흔히 떠올리는 되는 것들이 있다. 떼지어 다니며 겁주고 문신과 흉터로 도배된 몸둥아리에 잦은 욕설과 가오 잡는 그림들.. 이 영화에선 그런 걸 많이 덜어내면서 세 남자의 이야기에 중점을 든다. 그들이 꿈꾸는 신세계로 얼추 대변되지만, 종국엔 그들이 가고자 하는 막다른 종착지가 아니였을까. 결국엔 살거나 죽거나지만..
세 남자가 가고 싶었던 서로 다른 신세계
"너, 나하고 일 하나 같이 하자"
경찰청 수사 기획과 강과장(최민식)은 국내 최대 범죄 조직인 '골드문'이 기업형 조직으로 그 세력이 점점 확장되자 신입경찰 이자성(이정재)에게 잠입 수사를 명한다. 그리고 8년, 자성은 골드문의 2인자이자 그룹 실세인 정청(황정민)의 오른팔이 되기에 이른다.
"우리 브라더는 그냥 딱, 이 형님만 믿으면 돼야!"
골드문 회장이 갑자기 사망하자, 강과장(최민식)은 후계자 결정에 직접 개입하는 '신세계' 작전을 설계한다. 피도 눈물도 없는 후계자 전쟁의 한 가운데, 정청(황정민)은 8년 전, 고향 여수에서 처음 만나 지금까지 친형제처럼 모든 순간을 함께 해 온 자성(이정재)에게 더욱 강한 신뢰를 보낸다.
"약속 했잖습니까... 이번엔 진짜 끝이라고"
한편, 작전의 성공만 생각하는 강과장(최민식)은 계속해서 자성(이정재)의 목을 조여만 간다. 시시각각 신분이 노출될 위기에 처한 자성(이정재)은 언제 자신을 배신할 지 모르는 경찰과, 형제의 의리로 대하는 정청(황정민) 사이에서 갈등하게 되는데…
조폭영화에서 중요한 테마는 우두머리 '보스'가 아니다. 그 보스의 일대기를 그린 게 아니라면, 보통은 보스에 이어서 후계자 경쟁이 부상했을 때 이들의 암투를 그리는 게 다반사고 그게 또 먹힌다. 여기 '신세계'도 그런 타입이다. 국내 최대 범죄 조직 '골드문'의 회장이 갑작스럽게 교통사고로 죽게 되자, 조직내 2인자였던 정청(황정민)과 3인자 이중구(박성웅) 이들의 후계자 전쟁이 펼쳐지게 된다. 그리고 그 속에 정청의 오른팔로 8년간 활약해온 이자성(이정재)이란 인물이 버티고 있다. 그런데 이자성은 잠입경찰로 프락치다. 한마디로 골드문을 와해시키기 위해서 경찰 수뇌부가 투입한 스파이란 거. 이런 걸 쥐도새도 모르게 지휘하는 강과장(최민식)은 작전 성공만을 위해서 갈수록 정체가 탄로날 위기에 빠지는 이자성의 목을 조여간다. 그 사이, 정청과 이중구의 양자대결 후계자 싸움에서 이중구가 먼저 나가 떨어지고, 정청이 그 자리를 꿰찰 즈음에 프락치가 탄로난다. 그것은 이자성이 아닌 다른 두 경찰. 이자성은 절체절명의 위기 속 멘붕에 빠지며, 두 세력이 서로 죽고 죽이는 그 사이에 서서히 자신의 욕망을 드러낸다. 왜, 자신은 어떻게든 살아야 하니까..
한국 조폭영화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한 '신세계', 심플하니 볼만하다.
영화 '신세계'는 흔한 조폭물의 양상을 띈다. 조직내 세력 싸움은 물론 후계자 경쟁이라는 설정이 전체적으로 관통하고 있다. 그런데 이 영화에선 세 남자의 얽히고설킨 듯한 구도를 보이며 주목을 끄는 방식이다. 최고의 보스도 아닌 씬스틸러스럽게 무장한 똘마니들 얘기도 아닌, 주인공 정청과 이자성 그리고 강과장, 이 세 남자의 커넥션이 중심을 잡는다. 하나는 조직을 와해시키 위해서, 하나는 보스가 되기 위해서, 또 하나는 살기 위해서 그렇게 내몰린다. 그게 이 영화의 힘이자 연출력이다. 전작 <혈투>는 시망했어도, 그전에 <부당거래>와 <악마를 보았다> 시나리오를 집필한 박훈정 감독의 스토리가 제대로 펼쳐진다. 칼과 몽둥이가 난무하는 조직내 패싸움도 중반 이후 거하게 한 번 나올 정도로, 이들의 토킹어바웃으로 대변되는 힘의 대결을 그리고 있는 것이다. 그것도 꽤 심플한 타입으로 말이다.
우선, 걸쭉한 사투리에 베인 찰진 욕지거리와 때론 인간적 냄새까지 풍기는 정청 역에 황정민은 캐릭터상 가장 돋보이는 존재다. 영화 <달콤한 인생>에서 잠깐 출연했던 그 백사장의 아우라(초죽음이 된 이병헌 앞에서 "그건 무슨 표정이야"를 날린 쩌는 대사)에서 더 업그레이된 모습은 그가 진짜 조폭스러움을 가늠케 만든다. 이런 정청과 대결 구도를 갖는 3인자 이중구 역할의 박성웅 또한 차가운 눈매 만큼이나 극에 잘 흡수돼 무게감을 잡는다. 이들 두 구도에 잠입경찰로 들어와 8년간 정청의 오른팔로 활약한 이자성 역 이정재는 기존의 가오잡는 이미지를 한껏 빼며 극 중심에 섰다. 그리고 이들을 조정하듯 폐쇄된 실내낚시터에서 지령을 내리는 강과장 역 최민식의 존재감 또한 볼거리 중 하나. 전작 '범전'에선 뇌물먹는 세관공무원으로 끝까지 살아남은 그였지만, 이런 형사 역할도 잘 어울리게 극의 흐름을 잡았다. 이외 조연급의 주진모, 장광과 최일화 등 연륜있는 배우들의 포진으로 기업형 범죄 조직 골드문은 허황이 아닌 실제처럼 다가오게 만들었다. 개인적으론 이 영화 유일한 홍일점인 송지효는 접석책으로 나왔는데 존재감이 좀 아쉽지만, 이런 캐릭터들 조합은 무게감 있게 굿이다.
아무튼 신세계는 나름의 화제성을 갖추며 한국 조폭영화의 계보를 잇고 있지만, 그런 그림이나 전개방식 등이 기존과는 다르게 액션 일변도가 아닌 드라마적으로 그려낸 심플한 타입의 조폭물이라 할 수 있다. 여기에 잠입경찰이 조직내 들어가 벌이는 이야기는 음모와 의리, 배신으로 점철된다 할지라도 이 정도면 기본으로 잘 뽑아낸 '느와르'다. 대중적으로 다가서기 보다는 아집이 보일 정도로, '신세계'를 연출한 박훈정 감독의 변이 영화를 관통하는 느낌이 그렇다. 항간에 홍콩 느와르 '무간도'와의 비교에 대해 '잠입 경찰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라 조직과 조직, 세력과 세력의 이야기'라고 못 박으며 "개인의 힘으로 어찌할 수 없는 거대한 권력게임 속에 휘말려 들어갔으면서도 자신이 옳다고 믿는 바를 향해 모든 것을 던지는 남자들의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다"라는 말처럼, '신세계'는 어찌보면 살고자 죽이고자 '일수불퇴'의 자세로 내몰린 세 남자의 이야기다. 그 속에서 누가 죽고 사는지 이미 예견된 반전일지라도, 심플하고도 담백하게 그려낸 '신세계'가 한국 조폭영화의 새로운 패러다임이 될지도 모를 일. 가오만 잡는 시대는 끝났다..
정청이 이자성에게 끝내 말한다. "독하게 굴어.. 그래야 니가 살아..."
예고편 : http://movie.naver.com/movie/bi/mi/mediaView.nhn?code=91031&mid=19699#ta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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