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영화에서 '조폭'의 소재는 그리 낯선 게 아니다. 그들의 존재가 사나이들 우정으로 미화되거나 때론 희화화 되는 등, 스크린 속에서 깍두기들은 열심히 '형님'을 외치며 아직도 스크린을 활보한다. 익숙하게 2000년대 초를 장식했던 <신라의 달밤> <달마야 놀자> <조폭마누라> <두사부일체>, 그리고 <가문의 영광> 시리즈까지 제목만 들어도 딱 느낌이 오는 전형적인 조폭 코미디이자 드라마들. 이들의 일상적(?) 이야기를 다소 비틀어대는 방식으로 나온 게 2013년 <박수건달>이다. 엘리트적이고 젠틀한 이미지를 갖춘 배우 '박신양'. 6년 만의 스크린 복귀작으로,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박수무당 할 때 그 박수와 건달이 합쳐서 무당으로 변모된 한 조폭남자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그것도 코믹하게.. 그게 이 영화의 관전 포인트다. 그런데 "2013년 대박기운 운수대통 코미디가 온다"며 기세좋게 포복절도할 것처럼 위세를 떨지만, 그렇게 빵빵 터지진 않는다. 웃음의 간결은 좋으나, 너무 홍보된(?) 탓에 코믹의 지점을 알고 보는 정도랄까. 아무튼 한국인 정서랑 무관하지 않는 '점, 무당, 신내림' 등이 코믹하게 한 건달에게 빙의돼 좌충우돌 했으니 '박신양'의 박수무당 변신은 제대로였다.
건달로 사느냐, 무당으로 사느냐 그것이 문제로다!
보스에게 신임 받고, 동생들에게 사랑 받는 엘리트 건달 광호(박신양).
남 부러울 것 없이 승승장구 하던 그의 건달 인생에 ‘그 분’이 태클을 걸었다?! 호시탐탐 광호를 밟을 기회만 노리던 태주(김정태)의 칼에 맞고 순식간에 바뀐 운명선 때문에 낮에는 박수무당, 밤에는 건달의 투잡족이 되어버린 광호! 하지만 존경하는 보스 가라사대, 쪽 팔리면 건달 아니라 안카나! 하루 아침에 부산을 휘어잡는 건달에서 조선 팔도 최고 ‘신빨’ 날리는 박수무당 되다!
조폭세계란 게 원래 그렇다. 조직내 2인자를 가르는 파벌 싸움은 항상 있기 마련. 넘버3가 아닌 넘버2를 노리는 광호(박신양)와 태주(김정태)는 영화 초반부터 도심을 고속질주하며 카레이싱을 헐리웃처럼 펼친다. 약속 장소에 도착해서 지들끼리 싸움이 벌어지고, 잠깐 틈을 보인 사이, 광호가 태주에게 칼침을 맞는다. 아니 그 순간, 사시미를 오른손으로 잡아 위기를 모면하고, 손바닥이 크게 찢어지져 손금이 확 바뀌면서 운명스런 '무당'길로 접어든다. 조폭 생활도 바쁜데 안 보이던 게 보이고 들리는 등, 신내림이 제대로 광호에게 붙어버렸던 것. 허당스런 명보살(엄지원)을 찾아가 굿을 통해서 떨치려 했지만, 이미 그는 신기만빵의 무당이 돼고, 건달과 무당의 이중생활이 코믹하게 전개된다. 급기야 이승을 떠도는 귀신들까지 보이고 소원까지 들어주는 투잡까지 뛰는데.. (조진웅과 취조실 그 장면이 코믹 대박씬) 조직내 파벌과 리조트 사업건으로 바쁜 와중에 불현듯, 노란색 쫄쫄이를 입은 여자아이가 다가오면서 박수건달 광호는 키다리 아저씨로 서서히 변모하게 된다. 박수건달과 귀엽고 재미난 소녀를 통한 감성팔이는 그렇게 혼용되며 스크린을 웃다가 울리는 수순으로 내달린다.
박수건달, 조폭 코미디의 전형성을 벗어난 박신양 캐릭터와 감동코드의 혼용
영화는 딱히 모나지 않는 전형적인 조폭 코미디처럼 보이지만 그 전형성에서 조금은 벗어나 있다. <조폭마누라>를 연출한 조진규 감독 스타일에 덧붙여 기존에 조폭을 소재로 했던 영화들과 다른 점이 엿보이는데, 그들 세계를 진중하면서도 희화화 시키는 무리수적 무식개그나 화장실유머가 이 영화엔 적은 편이다. 자연스럽게 이끄는 구도로 이질감은 없는 편. 박신양의 건달 모습도 진지 모드. 대신에 2인자를 노리는 태주 역 김정태의 포지션과 그의 오른팔 똘마니가 다소 슬랩스틱 코믹을 구사할 뿐, 이들 조폭 세계는 무난하게 기본적이다. 색다른 건 조폭들이 절로 갔던 '달마야 놀자'처럼 이번엔 이들이 '점집'으로 모여들면서 벌이는 한바탕 난리부루스가 볼만하다. 진지했던 건달 박신양이 무당으로 변모된 모습은 자연스럽게 어우려져 코믹을 극대화시켰다. 한마디로 이들은 '무당파'. 여기에 백치미와 허당끼를 작렬하는 푼수데기 무당 명보살 역 '엄지원'이 재밌었고, 이들 조폭의 우두머리 회장님을 치료하며 박신양과 러브모드를 풍긴 미숙 역의 (오래만에 나온 션의 아내) 정혜영은 반가운 얼굴 정도.
그외 박신양의 오른팔로 나온 춘봉 역 김성균의 포지션도 나쁘진 않았지만, 전작 <범죄와의 전쟁>을 생각하면 이번엔 그 쓰임새가 효과적이지 못하게 코믹으로만 휘발돼 버렸다. (김성균은 얼굴 때문이라도 코믹 보다는 그 자체로 나서는 게 좋을 듯..) 2인자를 노리는 김정태의 존재감 또한 부각되지 못한 채 애드립성 코믹을 넘나들며 묻어가는 타입. 그래서 '박수건달'은 '박신양'에 의해서 펼쳐지는 원탑의 영화라 할 수 있다. 제목처럼 박수무당과 건달의 이중생활을 오가는 코미디와 드라마를 절묘하게 작두타듯 펼쳐내며 재미를 선사. 그런데 영화 초중반의 이런 묘미들이 후반으로 갈수록 그 노랑 쫄쫄이 여자아이(윤송이, 처음보는 아역인데 연기는 찰지게 잘한다. 극중 비중도 높은 편)를 통해서 가족애를 내세운 감성코드로 그리며 상충되게 다소 김빠지게(?) 했다. 소위 '감성팔이' 감동코드로 마음이 여린 관객들에겐 눈물샘을 자극할지 몰라도, 웬지 이런 설정은 안일한 종착점이랄까.
종국엔 폭력으로 담보된 미화적 묘사도 그렇고, 귀신 여자아이의 소원을 들어주는 '키다리 아저씨'로 급변경돼 박신양이 앞서서 열연을 펼친 코믹한 박수무당과는 별개로 보일 정도다. 결국 무당으로 변모한 색다른 조폭 코미디에 감성팔이 코드를 버무려 웃음과 울음의 익숙한 패턴으로 그려낸 일종의 가족애 드라마로 귀결되기도. 어쨌든 개인적으론 '박신양'이라서 기대가 컸다. 그의 조폭은 나름 달랐으니까.. 98년작 '약속' 때처럼. 그런 건달 2인자가 박수무당으로 코믹한 변신은 제대로였으나, 감동을 짜내기 위한 막판의 그런 설정은 달갑지 않다. 마치 차태현 주연의 <헬로우 고스트> 연상케하는 구도긴 해도 느낌은 다르다. 헬로우는 후반이 볼만했고, 박수건달의 후반은 별로.. 그래도 배우 박신양에게서 좀처럼 찾아보기 힘들었던 코믹한 이미지를 이 영화를 통해서 제대로 만나볼 수는 있겠다. 그게 이 영화에서 유일하게 건진 매력 포인트가 아닐까. 이런 박수무당 변신이 어느 남자배우가 어울리겠는가..
PS : 하도 무당에 빙의되니까.. 전화받는 씬에서 순간 빵 터졌다. 취조실 그 장면보다도.. ㅎ
예고편 : http://movie.naver.com/movie/bi/mi/mediaView.nhn?code=91073&mid=19415#ta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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