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여기 제목부터 아주 직관적으로 눈길을 끄는 SF 영화가 있다. 인류가 멸망하는 내용을 그것도 보고서처럼 자세히 보여준다니.. '인류멸망보고서'가 드러내는 심상은 꽤 의미심장하면서 단도직입적이다. 한마디로 확 들어온다. 그러면서 멸망의 3가지 징후를 옴니버스식으로 보여주며 눈길을 끈다. 한 편도 모자라 무려 3편이나 보여주니 이건 관객 입장에선 일석삼조라 봐야 할까.. 하지만 그 3편의 이야기는 그렇게 다양한 효과를 발현하지 못한다. 한국영화 산업에서도 유독 척박하다는 SF 장르에 과감히 도전장을 내밀며 만들었지만 색다르거나 독특함은 다소 떨어진다. 그것은 주제의식 표출 뿐만이 아니라, 3가지 소재를 가져와 풀어내는 방식에 있어서 매끄럽지 못한 느낌마저 든다. 아닌가?!
여기에다 3편 중 하나를 제외하고 앞선 두 개의 에피소드는 6년 전 만들어졌고, 당시 투자를 받지 못해 개봉이 지연되었던 작품이란다. 그래서 빛을 못 볼 뻔하다가 '김지운' 감독의 합류로 투자 받고, 작년에 만들었다는 마지막 3편 에피소드로 '임필성' 감독의 '해피 버스데이'가 추가돼 올해 관객들과 만나게 되었다는 전언이다. 어쨌든 6년 전의 SF적 감성이 뒤떨어진다고 할 수는 없겠지만.. 이미 우리는 헐리웃의 수많은 SF 장르에서 표출된 영상과 이야기 그리고 메시지까지 담아낸 그런 그릇에 익숙하다. 그래서 여기서 보여준 좀비의 창궐, 그리고 인간을 능가하는 로봇의 해탈, 그리고 거대한 우주 행성이 지구로 충돌해 종말한다는 이야기까지.. 다소 신선함은 떨어진다. 그럼에도 한국식 SF 장르의 변용을 꾀하며 정치풍자와 코믹 등, 우리만의 SF 신세계를 담아낼려는 노력을 엿보이며 주목을 끌었다.
그렇다면 이들 3편의 멸망 보고서는 어떠했는지, 시놉시스와 함께 각 단평을 간단히 적어본다. ~

인류멸망보고서 1. 욕망의 끝은 섬뜩한 종말일지니…<멋진 신세계>
가족이 해외여행을 떠나고 홀로 남은 연구원 윤석우(류승범)는 소개팅 약속에 음식물 쓰레기를 분리 수거하지 않고 한번에 처리한 후 집을 나선다. 킹카(고준희), 맛있는 고기 요리, 즐거운 클럽. 온갖 유희 끝 그녀와의 달콤한 키스 현장을 덮친 고교생들을 괴력으로 응징한 석우의 몸에 이상한 변화가 온다. 거리를 뒤덮은 좀비의 물결, 광우병도 조류독감도 아닌 괴 바이러스의 정체를 캐는 매스컴의 호들갑도 무색하게 서울의 거리는 멸망으로 치닫는데…
충무로의 색깔있는 4차원적 배우 류승범이 좀비로 변했다. 나름 퀼리티가 있는 게 외국형 좀비 못지않다. 6년 전에 그런 특수분장이라니.. 영화는 좀비가 가지고 있는 판타지에 집중한다. 바로 윈인불명의 바이러스 감염.. 그 경로는 여럿일 수 있겠으나, 여기선 한국식의 음식물 쓰레기에 집중한다. 어떻게 보면 인간이 남긴 쓰레기 중 가장 더러운 쓰레기.. 그것이 재활용돼 사료가 되고 그걸 소가 먹고 그 소고기를 인간이 먹으면서 그 사과 껍질은 돌고 돌았다. 마지막 그 엔딩처럼.. 어쨌든 이런 변이로 인해 류승범은 좀비로 변하고, 그와 접촉한 킹카는 물론 사람들이 하나 둘 좀비로 변해간다. 이런 사태를 막을려는 무능한 정부의 비상사태 대처와 무개념 지식인들이 나온 방송토론 등은 사회적 풍자로 현상황을 코믹하게 꼬집는다. 봉준호 감독 좀 웃겼다는.. 하지만 좀비가 돼서 펼쳐보였던 그 '멋진 신세계'는 인간의 각종 욕망이 파멸로 치닫는 세계관을 보일려고 했으나.. 무언가 임팩트가 약하다. 윈인불명 바이러스로 인한 좀비의 창궐.. 낯익은 소재에 낯익은 이야기일 뿐, 그저 그렇다.

인류멸망보고서 2. 피조물인 인간, 신의 영역을 넘보다! <천상의 피조물>
로봇이 인간의 노동을 대체한 미래. 천상사의 가이드 로봇 RU-4가 스스로 깨달음을 얻어 설법을 하는 경지에 이른다. 이를 인류에 대한 위협으로 간주한 제조사 UR은 해체를 결정하지만 그를 인명스님으로 부르며 숭배하는 승려들은 반대한다. 해체 직전, 일촉즉발의 순간, UR의 엔지니어 박도원(김강우)이 상부의 결정에도 불구하고 인명의 앞을 막아 서는데…
개인적으로 세 편 중 2편의 이야기가 가장 와닿고 나름 좋아 보인다. 하지만 현학을 떨듯 풀어내는 존재론적 가치관의 대립 방식에선 따라가기 벅차고 지리하다. 여기 어느 절간에서 해탈에 경지에 이른 하나의 로봇이 있다. 일견 영화 '아이로봇'에 나온 그 로봇처럼 생겨먹은 인명스님 로봇은 부처에 버금가는 설법을 하며 주목을 끈다. 로봇 역의 박해일 목소리가 한층 철학적이면서도 무언가 멜랑꼴리한 분위기를 자아내며 인간을 가르치려 든다. 그러자 그를 제조했던 사람들이 나서며 그를 없애려 한다. 한마디로 로봇이 인간을 밟고 올라서는 작태를 막으려는 것인데.. 하지만 인명스님 로봇은 그런 곳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나는 무엇입니까? 어디서 나서 어디로 가는 겁니까?" 반복 주문하며 열반에 든다. 존재론의 철학적 고찰을 통해서 깨달음을 설파하는 로봇.. 신의 영역까지 넘보는 그는 정말 인간로봇인가? SF가 가져올 미래에 로봇사회는 바로 이런 모습이 아닐까 싶다.
그런데 과연 인간은 그들을 조정할 수 있을까?

인류멸망보고서 3. 그날 이후, 살아있음을 기뻐하라! 인류, 제2의 탄생 <해피 버스데이>
당구광 아빠의 8번 당구공을 부셔버린 초등학생 박민서(진지희)는 정체불명의 사이트에 접속, 당구공을 주문한다. 하지만 2년 후 당구공 모양의 괴 혜성이 지구를 향해 날아오기 시작하고 임박한 멸망에 민서 가족은 오타쿠 삼촌(송새벽)이 설계한 지하 방공호로 대피한다. 그리고 7년 후, 엄청나게 밝은 광채에 홀려 민서(배두나)는 용감하게 지상으로 향하는데…
조금은 괴상한 설정과 B급의 정서로 풀어낸 지구 멸망 이야기다. TV나 뉴스 등을 통해서 흔히 봤을 외계인 UFO의 출현이라든지 혹은 엄청난 크기의 괴행성이 지구와 충돌한다든지 하는 포맷을 그대로 차용했다. 그런데 어느 꼬마 아가씨가 요상한 사이트에서 주문한 당구공이 2년 후 그 모양새로 괴행성이 되어 지구를 향해 돌진한다는 다소 황당한 설정이다. 결국 지구에 충돌하기 직전, 12시간 카운트다운에 들어간다. 즉 부딪히는 순간 모든 게 사라질 그 위기에.. 여기 조금은 괴짜스런 가족들이 지하 방공호로 피신하며 그 상황을 예의주시한다. 그러면서 TV를 통해 대충돌 소식을 전하는 류승수의 과도한 코믹은 극에 좀 거슬려 보인다. 여기에 이들 네 가족, 과학괴짜 삼촌, 그의 형과 형수 그리고 진지희 꼬마 숙녀까지 맞이한 제2의 인류 탄생의 폼새는 무언가 엉성하다. 장편으로 좀더 길게 가져가 디테일을 살리면 좋을 이야기자 구도다.

좀비와 로봇 그리고 괴행성의 대충돌, 철지난 '인류멸망보고서' 그래도 볼만..
이렇게 본 영화는 세 편의 에피소드를 담아낸 본격 한국형 SF물이다. 그렇다고 헐리웃처럼 비주얼적 판타지한 액션의 향연이 있는 그런 류가 아닌 다분히 메시지를 담아서 풀어내는 그런 식의 SF다. 이른바 한국식의 변용이라 할 수도 있는데.. 그래도 좀비로 분전한 류승범과 고준희는 나름 잘 어울렸고, 해탈의 경지에 오른 로봇의 비주얼은 나름 압도적이다. 괴행성의 대충돌을 그려낸 찰나의 폭발 CG까지 분명 볼거리 요소도 있다. 다만 본 영화의 관전 포인트는 누가 뭐래도 '메시지'다. 그럼에도 그 메시지를 풀어내는 방식이나 전개가 그렇게 매끄러워 보이진 않는다. 무언가 강박에 쫓기듯 보편적인 지구 멸망의 징후가 가져올 그림에 안착을 했을 뿐이다.
이른바 윈인모를 바이러스 감염으로 인한 좀비의 창궐, 인간이 만들어낸 로봇의 해탈경지, 그리고 괴행성의 지구 대충돌까지.. 이른바 SF에서 전형적으로 그려낸 소재와 그림들을 쓰리콤보로 보여주며 시선을 끌었다. 그래서 나름 다양하게 좀비호러, 로봇SF, 코믹까지 장르로써 풀어낸 재미적 측면에선 볼만은 하다. 그렇다면 이것이 진정한 인류멸망보고서라 볼 수 있을까? 이미 여러 경로를 통해서 접했듯이, 인류 종말의 징후는 이미 예견되고 인지됐을 뿐.. 여기 보고서는 철지난 보고서일 뿐이다. 메시지 전달의 파급력은 그리 세지 않았다는 게 본 영화의 포인트가 아닌가 싶다. 그래도 이 정도면 SF 차기작을 노려 봄직하다. ~
예고편 : http://movie.naver.com/movie/bi/mi/mediaView.nhn?code=61004&mid=173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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